지난 7월 5일 서울에서 또다시 50만개의 촛불이 모였다.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거대한 촛불의 움직임도, 정의구현사제단의 참석도 아닌 어느 DVD 커뮤니티 사이트 회원 50여명이 펼친 퍼포먼스였다. 1605년 영국 의회의사당을 폭파시키려다 실패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검은 모자와 검은 망토를 두른 이들은 '결국, 촛불이 승리합니다!'라는 현수막과 함께 행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낯선 퍼포먼스로 무엇을 말하려는지 물어보는 기자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보시면 압니다."
앨런 무어와 데이비드 로이드의 걸작 그래픽 소설을 영화화한 '브이 포 벤데타'는 2040년 통제사회가 되어버린 영국을 배경으로 복수심에 불탄 반정부 슈퍼 영웅 '브이'를 다룬 2006년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매트릭스를 능가하는 액션영화'라는 홍보 문구에 낚인 관객들의 비난(?) 덕분에 조용히 간판을 내렸지만 최근 영화 가운데 최고 수준의 정치 영화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2040년 영국은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하는 파시스트 국가이자 경찰국가로 변했다. 정부는 외부의 위협에 대한 공포를 핑계로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등 국민의 자유를 축소하는 행위를 정당화 한다. 이때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온 몸을 검은색으로 치장한 '브이'가 테러를 감행해 형사재판소 건물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브이'는 정부가 장악한 방송국까지 침투해 셔틀러 의장을 중심으로 한 독재 권력에 대항할 것을 국민들에게 주장한다. 이에 셔틀러는 공권력과 미디어를 동원해 막아보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거세어진다.
'브이 포 벤데타'는 우리 시대의 정치에 대해 과감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정치적 관점을 하나로 고정시키지도 않는다. 주인공 '브이'의 행적이 때로는 혁명가로 때로는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데 이는 영화가 던져주는 화두를 관객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현명한 선택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가진 비범함에는 각본을 담당한 워쇼스키 형제(지금은 남매로 불리는)의 공이 크다. 원작의 남다른 팬이었던 워쇼스키 남매는 '매트릭스'를 만들지도 않았던 1990년대에 '브이 포 벤데타'의 초고를 완성했다. 그래서인지 워쇼스키 남매는 출세작 '매트릭스'3부작의 히어로 '네오'를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에게서 상당 부분 빌려왔다. "국민이 정부를 무서워해선 안 된다. 정부가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 "총알은 절대 신념을 뚫지 못한다."와 같은 현란한 대사들도 워쇼스키 남매의 빛나는 대본 덕분이다.
2디스크로 발매된 브이 포 벤데타'DVD는 출시된 지 2년이나 지난 덕분에 주변의 대형소매점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수준 이상의 영상과 음향을 구현하는 영화 본편은 만족스럽지만 부실한 부가 영상과 음성해설의 부재는 '옥에 티'다. 하지만 원작을 중심으로 한 그래픽 소설의 역사에 관한 부분과 영화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은 '브이 포 벤데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면 지금 인터넷에 접속하길 바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가이 포크스 가면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1만8천원의 가격에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브이 포 벤데타'를 연출한 제임스 멕테이그 감독의 다음 영화가 바로 '월드스타'비가 헐리우드에서 첫 주연을 맡은 '닌자 어새신'이다. 비는 '네오'혹은 '브이'가 될 수 있을까?
김경덕(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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