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란 말은 비단 불교의 수행승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이 말은 매우 유효하다. 부부들이 싸움을 할 때 가장 많이 내뱉는 레퍼토리의 하나가 "당신 같은 남자(여자)를 만나 내가 이 고생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일체유심조의 취지에 맞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당신이 나를 만나 이렇게 고생을 하는군요"라고. 배우자끼리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는 마음은 부부의 애정을 더욱 튼실하게 받쳐주는 버팀목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구 중구에서 '고경자 메이크업웨딩'을 운영하는 고경자(51·여) 대표. 지난 30년 동안 2만쌍이 넘는 신랑·신부의 결혼을 뒷바라지한 고 대표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를 갖느냐부터 물었다. "글쎄요. 저는 결혼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결혼을 통해 신랑이나 신부가 철이 들 수도 있고 삶과 사고, 인생관이 바뀐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작이란 말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열손가락안에 드는 토털웨딩숍을 경영하는 고 대표의 삶은 신랑·신부와'동고동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원도 횡성이 고향인 그녀는 춘천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미용사원으로 입사했다. "18살때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지요. 한국화장품에 다닐 때에는 응원단장으로 뽑혀 한국화장품 야구단 응원을 맡기도 했어요. 그때 야구단 선수로 활약하던 김재박 LG트윈스 감독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미용사원을 하면서 토·일요일에는 예식장을 찾아다니며 신랑·신부의 화장을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20대 초반 대구로 시집 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토털웨딩업에 뛰어들었다.
귀빈·오성·금성 등 대구의 예식장에서 신랑·신부 메이크업을 해주는 것은 물론 드레스와 턱시도 대여, 결혼사진 촬영 등 토털웨딩 일을 했다. "직원을 한명만 두고 제가 거의 모든 일을 다했어요. 돈을 아끼려 가게의 인테리어를 직접 하다보니 먼지가 앉아 눈썹이 하옇더군요." 고 대표는 일부에서는 신랑·신부의 드레스와 턱시도에 높은 비중을 두지만 메이크업과 헤어가 아름다운 결혼식을 좌우하는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통해 신랑·신부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커버할 수 있지요. 저는 신랑·신부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할 때엔 신랑·신부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물론 취향과 예식장소, 계절 등 여러가지를 모두 고려합니다. 그래야만 신랑·신부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줄 수 있지요."
토털웨딩업계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는 고 대표의 성공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과 트렌드를 따라가는 순발력이다. "지난 30년 동안 주말을 한번도 쉬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쉽게 믿지 않더군요. 주말에 결혼이 몰리다보니 정말로 한번도 쉬지 않았습니다." 30년을 일에만 매달리다보니 주말에 가족끼리 놀러간 것이 한번도 없을 정도다. "교통사고로 목과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 깁스를 하고 환자복을 입은채 잠시 병원을 나와 신랑·신부의 화장을 직접 해준 적도 있지요. 병원에 같이 있던 환자들이 저를 보고 '가짜환자'라며 놀리더군요. 신랑·신부를 우선하다보니 가족이나 친지들의 생일 등 행사에 빠지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시어머니와 남편, 아들과 딸, 며느리, 손자, 손녀 등과 함께 사는 고 대표는 "일에 매달릴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준 가족들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신랑·신부의 메이크업 경우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해야 하는 워낙 세밀한 작업인데다 드레스에 비즈를 다는 작업도 일일이 본인이 하다보니 2.0이던 시력이 이제는 돋보기를 써야할 정도로 나빠졌다.
토털웨딩이 유행을 타는 업종인 만큼 최신 트렌드를 쫓아가고 실력을 기르는 데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주경야독으로 대구가톨릭대 섬유염색학과와 대구산업정보대학 패션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1년에 한번 정도는 프랑스 파리에 직접 가서 최신 메이크업 흐름과 기술을 배워옵니다. 또 서울의 방송국에서 분장사로 활동하는 제자들을 통해 가수와 텔런트들이 선호하는 메이크업도 파악하지요." 5년전부터 대경대학 뷰티디자인학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고 대표는 지금까지 500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30년 동안 토털웨딩 일을 해온 고 대표는 "일 자체를 즐긴다는 게 이 자리에 서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돈을 번다는 것을 떠나 일이 없으면 우울해져요. 제 좌우명은 '돈을 남기는 장사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사하는 사람 다 똑같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지요. 비즈니스로 손님들과 만나지만 인간적 신뢰와 믿음을 주고 받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아이들을 데리고 인사를 오거나 인생 상담을 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한번 인연을 맺은 고객들과의 우정과 신뢰가 두텁다.
고 대표는 사회봉사에도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매년 8~10쌍에 이르는 장애인 신랑·신부에게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장애인과 새터민 신랑·신부 45쌍의 결혼식을 뒷바라지했다. "그분들의 고맙다는 말씀 한마디에 힘이 나지요. 돈을 많이 벌진 못했지만 사람을 많이 사귀어 '사람부자'라는 소리는 많이 듣습니다."
고 대표의 목표는 결혼식을 올리는 웨딩홀 경영 및 장학사업이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공장에서 무슨 물건 찍어내는 것처럼 식을 치르더군요. 제가 웨딩홀을 운영하게 된다면 평생 추억에 남는 결혼식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고 대표는 예비 신랑·신부들이 인터넷 검색도 좋지만 웨딩숍을 방문, 메이크업과 드레스를 직접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말미에 고 대표에게 부부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졌다. "양보와 신뢰가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하지요. 그리고 참는 것이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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