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소리/박순원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모란이 필 때

어떤 소리가 나는데

우리는 듣지 못 한다

멀리서 별과 별이

부딪칠 때도 소리가 나는데

그것도 듣지 못 한다

가끔 개가 듣고 짖는다

과일이 다 익어서

떨어질 때도

소리가 난다

이제 됐다

너 혼자 살아라

예전에 내가

어떤 여자가 헤어질 때도

소리가 났다

이제 됐다

각자 살자

눈빛에서 소리가 났다

그녀가 키우던 개가

그 소리를 들었는데

못 들은 척하고

잠잠했다

한 감각에 집중하면 다른 감각이 활동을 정지한다. 다르게 말하면, 눈을 감으면 귀가 열린다.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 꽃잎이 열리는 소리, 나뭇잎 입술 비비는 소리, 돌멩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눈빛에서 소리가 난다니?

결별을 선언하는 사람의 눈빛이 얼마나 서슬 퍼렇겠는가. 그 눈빛에는 과연 별과 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시의 매력은 능청스런 어법에 있으니 크나큰 절망감을 감추고 엉뚱하게 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수법이 그것이다. 과연 지독하게 아픈 상처에는 시멘트 포장이 최고다.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대구·광주 지역에서는 군 공항 이전 사업을 국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광주 군민간공항이 무안국제공항으로 이전하기로 합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의 4지구 재건축 시공사가 동신건설로 확정되면서 9년여 만에 사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조합은 17일 대의원회를 통해 ...
방송인 박나래의 전 남자친구 A씨가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 경찰에 제출한 혐의로 고발되었으며, 경찰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다. 이와 함께 경...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