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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 광장] 어려운 이웃에 손을 내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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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른 하늘, 뉘엿한 햇살, 두둥실 하얀 구름, 그 아래로 알알이 영글어가는 온갖 곡식들과 주렁주렁 탐스럽게 익어가는 과실들…. 그저 이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지는, 참 좋은 가을 문턱입니다. 초저녁 맑은 하늘에 반달이 떴습니다. 이제 오는 이레 동안 저 기운 달이 차오르면 한가위 둥근 보름달이 되겠지요.

농사를 지어 먹을거리를 얻었던 우리네 조상들의 삶은 아마도 이맘때가 가장 한갓진 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 어릴 적 기억으로 보면 모든 일상을 잊고 온 마음과 몸을 풀어헤친 채 먹고 마시고 풍장 치며 소리하고 춤추고…. 놀이에 빠져 몇 날 몇 밤을 지새워도 흉이 되지 않던, 한없이 너그러운 때가 바로 한가위 이 무렵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한가위 오늘만 같아라'라는 옛말처럼 우리네 일상이 늘 잔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 세상은 더 바랄 나위 없이 살맛이 넘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겠지요.

틈만 나면 우린 경제 대국을 외칩니다. 어느새 우리 사회는 먹을거리 걱정을 벗은 지 제법 오래입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세계 7위의 수출대국이요, 10위권 안팎을 맴도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고 자랑이 참 요란합니다. 날마다 어떻게 하면 더 적게 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고 또 출렁이는 비곗살을 빼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며 경쟁적으로 법석을 떨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린 이미 넘치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삶 속의 축제는 웬일인지 참으로 멀어진 느낌입니다.

우리가 풍요를 꿈꾸는 것은 우리의 숨 쉼을 편하게 하기 위함이겠지요. 또한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경쟁은 우리네 삶 속에 쉼을 더욱 늘리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풍요가 우리의 숨 쉼을 더욱 어렵게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보름 전쯤인가요. 서울에서 달려오는 지하철에 제 몸을 던져버린 어린 여고생의 소식이 시답잖은 듯 신문에 실렸습니다. 지난주에는 대구의 한 남자 고등학생이 대학 입시의 부담을 못 이겨 고층 아파트의 옥상에서 제 몸뚱이를 던져버렸다고 하더군요. 이런 어린 생명들의 투신이 더 이상 화제가 되지도 못하는 무감각한 세월을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저 입시철이 가까워지는 징후 정도로만 치부되는 참 잔인한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나눔이 없는 풍요는 우리의 삶을 메마르게 하는 참으로 큰 재앙일 수 있습니다. 남의 숨을 배려하지 못하는 경쟁은 잔혹한 결과를 남길 뿐이지요. 우리의 어린 생명들이 일탈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제 몸뚱이를 던져버리는 이 잔인한 투신은 나눔이 없는 풍요와 이웃의 숨을 배려하지 않은 무모한 경쟁이 낳은 참으로 참혹한 결과가 아닐는지요.

우리의 어린 생명들에게 경쟁만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멈추어야 하겠습니다. 잠시 경쟁을 멈추고 뒤 처진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에게 격려를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야 하겠지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주고 함께 기대어 나아가는 그런 삶을 가르쳐야 그들의 세상이 살맛으로 넘쳐나겠지요.

이제 경제가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외쳐야 하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무한 경쟁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살아간다고 해도 잠시 예술과 문화에 온몸을 던지는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네 삶에 살맛을 되살리는 가장 빠른 단 하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젠 더 이상 달리는 지하철이나 고층 옥상에서의 참혹한 투신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바로 세워주며 더불어 숨 쉼을 기뻐하는, 그런 큰 잔치에 온몸을 내던지는 아름다운 일탈과 행복한 투신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이상만(돋움공동체 대표·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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