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斷想] 햇빛과 햇볕

"옛 조상들은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소의 벌초를 한다고 했다."

"유화가 잔뜩 쌓인 긴 통로를 지나 햇볕이 드는 거실의 창가 쪽에서 화가 김점선은 초록색 물감을 캔버스에 바르고 있었다."

"낮에는 햇빛이 아직 뜨겁지만, 저물녘이 오면 어느새 풀벌레가 울고 소슬한 바람이 분다."

"구리로 주위는 둥글게 하고 가운데는 오목하게 하여 햇볕에 비추면 오목한 부분에 햇볕이 반사되어 집중되므로 불이 잘 붙는 물건을 그곳에 놓아 불을 일으키게 하였다."

"비닐, 부직포 등은 1, 2년이 지나면 햇빛에 의한 열화작용 등에 의해 손상되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나 기능성 논둑시트는 수명이 5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위에서 예시한 문장 중에 나오는 '햇볕'과 '햇빛'은 어느 것이 맞을까.

'햇빛'은 해의 빛, 즉 日光(일광)이며, '햇볕'은 해에서 내쏘는 뜨거운 기운을 뜻한다. '햇빛'은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밝음의 정도와 관계되며 視覺(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햇볕'은 熱(열)과 관계가 있으며 살갗을 통해 인지하는 것이다. "햇빛이 밝다." "햇빛이 환하다." "햇볕에 그을리다." "햇볕이 따갑다." "햇볕이 따스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북한 화해협력정책이 '햇볕정책'이었다. '햇볕정책'이란 말은 1998년 김 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런던대학교에서 행한 연설에서 처음 사용한 뒤부터 정착된 용어이다.

때아닌 무더위가 추석을 지나고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년 이맘때에는 태풍이 한두 개쯤 지나갔지만 올해는 태풍 영향이 없었고, 고기압 영향으로 비가 적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10월 초순까지 평년 기온을 웃도는 다소 더운 날씨가 예상된다고 한다.

가을볕에 딸을 내보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낸다는 옛말이 있다. 가을볕이 봄볕보다 약한 것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속담이다. 그렇지만 지금같이 무더위가 지속될 때는 가을볕이라고 방심해서는 곤란하다. 햇볕 속에 들어있는 자외선은 피부 속 멜라닌 색소를 자극해 주근깨와 기미 등을 유발하고 피부노화를 촉진시켜 주름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한 문장에서의 '햇볕'과 '햇빛'의 정확한 표현은 햇볕-햇빛-햇볕-햇빛(햇빛)-햇볕 순이다. "햇빛은 밝고, 햇볕은 따뜻하다."는 걸 명심하시길.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