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오늘로 꼭 7개월째다. 특유의 작은 눈으로 힘차게 취임사를 읽어내려 가던 게 어제 같은데 첫해도 남은 석 달이 전부다. 불행히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 채 집권 원년이 속절없이 지나고 있다. 안으로는 과거의 정치적 저항에 치이고, 밖으로는 세기적 경제 광란에 휘둘려 정신 차리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불운은 어디까지나 정상참작일 뿐이다. 근본 원인은 대통령 자신에 있다. 초장부터 헤맨 리더십이 여전히 낮은 신뢰도를 보이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는 본인 탓이다.
이 대통령이 중뿔나지 않으리라는 인상을 준 것은 맞다. 오랜만에 보통 대통령을 맞는 기대감마저 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입만 열면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이 던진 울림 역시 청계천 복원 당시 주변 상인을 4천200번 만났다는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 소통의 자세라면 믿어볼 만하다는 게 국민의 생각이었다. 지난 5년 내내 외골수 불통 정권에 덴 탓도 컸다. 하지만 인사에서, 미국 쇠고기 협상에서 보듯 대통령은 국민의 팔을 잡아채려고만 했다. 시작부터 힘이 들어가 자신의 생각에 국민을 끌어다 맞추려 한 것이다.
대통령은 촛불이 거리를 물들이던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 가슴을 쳤다고 했다. 이후 2차례나 소통 부족을 공개적으로 자책하며 다시 한번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입에 올리는 소통은 여전히 국민 머릿속에서 모호하게 겉돌고 있다. 같은 당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밥을 내는 것으로 소통의 문이 열렸다는 건지, 잘 짜인 TV출연으로 국민과 마음을 텄다고 보는 건지 알 수 없다.
촛불이 사그라지자 대통령은 고위관료들을 거느리고 청계천에 나타났다. 한숨 돌렸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광풍 뒤 첫걸음은 한우농가로 향해야 마땅했다. 청와대 식탁에 미국 쇠고기 올려놓고 안심시키는 것도 좋지만 한걱정하는 농민들을 찾았어야 하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철권을 휘두르면서도 논두렁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나누는 스킨십으로 국민 마음에 들어갔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외부에서는 모르지만) 이런저런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자기 기준의 소통법이다. 청와대 대화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해도 초대받은 입들은 자기검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상석에서 굽어 살피는 톱다운 소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은 말끝마다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들먹이는 버릇이 있다. '가난도 겪어 보았고, 학생운동도 해봤고, 경영도 해보았고, 행정도 경험했다'가 그것이다. 남들 이상 온갖 풍파를 겪었기 때문에 다 안다는 식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해봤고' 덫이다. 자신의 삶을 일반화하는 착각이고 상대 처지를 앞질러 재단하는 자기중심적 오류이다. 중국 춘추시대 管仲(관중)이 齊(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 요체는 쉽다. 그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끊임없이 백성의 의향을 살피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시켰다. 그리고 항상 균형을 생각하며 지나치지 않도록 애썼다'는 게 훗날 사마천의 평가다. 백성과의 소통이 관중의 정치적 힘이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세종을 닮고 싶다고 한다. 세종은 대궐 안에 버려진 목재로 초가집을 짓고 몸소 기거하는 것으로 백성의 고초를 함께 나누고자 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궁궐 생활만 한 지체로서 결코 쉽지 않은 처신이었다. 조정 신료와 왕후가 눈물로 말려도 세종은 애옥살이를 고집했다. 소통은 그런 것이다. 자나깨나 국민에 다가가려는 발심은 어느 시대 어디서나 민심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미국 대선에서 시골뜨기 아줌마 주지사가 통하는 것 역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지금 국민은 캄캄절벽에 처한 형국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럴 때 진가를 드러내야 할 리더십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국민은 CEO형 대통령이라 해서 다를 줄 알았다. CEO형은 달리 말해 장사꾼이다. 끈질긴 설득으로 고객 마음을 사로잡아야 유능한 것이다. 국민은 여태 CEO 리더십 맛도 못 봤다.
金成奎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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