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도심 재창조] ①대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오늘날 대구 도심은 어떤 모습인가.

올해로 대구읍성이 헐린 지 102년. 대구 도심은 한 세기 동안 발전과 팽창, 쇠락과 노화의 길을 걸어왔지만 누구 하나 도심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괴와 철거, 신축과 개발은 제각기 이뤄졌다. 종합적인 청사진이나 고민조차 없이 분야별, 부분별 그림만 그려댔을 뿐이다.

전통과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진, 무궁무진한 자산을 내버려둔 대구의 경쟁력은 과연 몇 점인가. 도심에 새 숨결을 불어넣어 되살리고(再生), 새롭게 만들어내면서(再創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여타 도시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갈 길이 멀다. 이제 겨우 대구시의 장기 프로젝트에 도심 재창조가 포함됐고, 도심재생사업의 기본계획이 나왔다. 늦었지만 다행인 건 행정기관에 일방적인 추진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함께 나아갈 바를 제안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대구 도심 재창조' 기획물을 통해 여론조사, 세미나, 아이디어 공모 등 시민 참여의 장을 폭넓게 마련해 비전과 청사진을 제공하겠다.

① 대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도심의 변천과 정책 흐름

"대구 도심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나?"

대구는 선사(先史)시대 이래 계속 발달하며 교통·군사상 요충지로 성장했다. 1590년 도심을 구획짓는 대구읍성이 토성으로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파괴당한 읍성은 1736년(영조 12년)에 석축으로 다시 쌓였다. 이후 170년 동안 대구 도심의 경계가 되던 읍성은 1906년 친일파 박중양에 의해 철거당했다.

철거한 읍성을 따라 1909년 말까지 만들어진 길이 동성로, 서성로, 북성로 등이다. 지도로 보면 방패 모양이다. 이 읍성 일주도로를 십자로 관통하는 도로는 1912년 완공됐다. 현재의 경상감영공원 일대다. 근세와 일제 강점기 대구 도심은 일주도로와 십자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놀라운 것은 방패 모양의 이 지역이 지금껏 한 번도 인위적인 개발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대구 최초의 근대적인 도시계획이 수립, 시행된 것은 1937년. 이후 1965년까지 유효했던 '대구 시가지 계획령'에서 도시 한가운데인 이 지역만 쏙 빠져 있다. 계획도로는 하나도 없다. 대구는 교통요충지였지만 서울과 부산, 진주 등으로 연결하는 외부도로를 놓는 데만 힘을 쏟았을 뿐 도심의 길은 모두가 자연발생적이다.

김천과학대 건축인테리어과 김주야 교수는 "읍성 내부는 20세기 초까지 형성된 골목과 당시 세대들이 살아간 궤적이 남아 있는 보물 같은 지역"이라며 "굳이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짓지 않아도 잘만 리모델링하면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대구 도심만의 향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근세 이후 대구는 읍성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 과정에 도심의 노화는 피할 수 없었다. 대구에서 도시재개발이 처음 계획된 것은 1979년. 계획구역은 시청-사대부국-향교-대건중고-신명여고-전매청-태평APT로 이어진 1.8㎞ 면적이다. 계획의 주목적이 도심 정비방향 설정과 통일성 유지 등이었으니 행정당국이 도심을 보는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1975년 대봉지구가 첫 도심재개발사업지구로 지정된 이래 1983년까지 덕산1~4지구, 태평2-1~3지구, 북성1·2지구 등 10개가 재개발 대상이 됐다. 이들 사업은 도시계획보다는 노후주택 등을 바꾸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쪽에 가까웠다.

◆도심의 경쟁력과 미래 가능성

지금까지 도심 재개발은 전면 철거 후 판매나 업무 시설로 재개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도심이 낡고 위험하고 못 쓰는 것이라는 판단 아래 진행된 이 방식은 되레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런 재개발에서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얻은 세계 도시들은 도심에 남은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 이야기들을 되살려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2020비전과 도심재생사업 기본계획 등에서 이제 막 고민을 본격화한 대구는 어떤가. 낡은 주거지, 불량한 이면도로, 쇠퇴한 상권 등 암울한 현실 못지않게 재창조 가능성을 잠재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대구대 도시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대구 도심은 일정한 범위 내에 근·현대 역사와 문화, 도심공원과 테마거리 등 강점을 두루 갖추고 있어 도심 재창조의 모범적인 성공 사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 도심에는 전체 문화시설의 42%가 집중돼 있고, 약전골목-종로-경상감영공원으로 이어지는 역사문화벨트가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약전골목, 공구골목, 오토바이골목 등 다양한 테마골목이 존재하며 국채보상공원-2·28기념공원-경상감영공원으로 이어지는 녹지축 형성도 가능하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 동성로 디자인 개선, KT&G 문화창조발전소 조성 등 도심 재창조의 흐름에 중요한 단위 사업들이 벌써 시작된 것도 희망적인 일이다.

50년 후, 100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도심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대구시가 구상하고 있는 도심재생사업 계획이 시민들의 참여 속에 무난히 추진될 경우 도심은 대구 발전의 기본축으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다.

당장 2020년쯤에는 개발이 정체됐던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가 문화·관광의 중심축으로 되살아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경상감영공원과 근대사박물관, 피란문학의 길이 어우러져 우리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명소가 되고 KT&G 문화창조발전소와 수창공원은 일대를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달성공원이 시 외곽지로 옮겨가고 그 자리에서 북성로까지 주거지구가 들어서 사람들이 되돌아오는 도심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약전골목과 종로 일대는 서울의 인사동처럼 대구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이 된다. 풍부한 역사자산과 한옥이 어울린 골목길, 약전골목의 향기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다. 동성로 주변은 쇼핑과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로 발전한다. 보행자 중심의 거리와 크고 작은 공원, 광장에서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이처럼 쾌적한 주거공간과 활성화된 상업지역, 뛰어난 접근성과 보행 중심의 교통·녹지축, 문화와 역사의 향기로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심의 모습은 결코 장밋빛 환상이 아니다. 시민 모두가 함께 참여해 만들어가야 하는 '가까운 미래'다.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들

13일 취재팀은 대구 도심을 다시 한번 샅샅이 훑었다. 취재차 나선 것이 벌써 여러 차례였지만 그때마다 가장 먼저 와닿는 건 도심 속에 사람이 붐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심은 흔히 도시계획이나 재개발의 대상인 물적 공간으로 여겨지지만,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살아가고 죽는 총체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는 데 먼저 주목해야 한다.

온전히 대구만의 특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세계 도시와 경쟁하는 도심 재창조의 첫 번째 원칙이라면 그 역시 사람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성로를 활보하는 10대들과 향촌동 구석구석을 지키는 70대, 몇 대째 살아가는 성내동 한옥 사람들과 평생 한길을 지킨 북성로 공구상까지 함께 뜻을 모으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도심 재창조를 성공으로 이끄는 첫 단계다.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인센티브 마련, 보존과 복원을 위한 예산과 조세 지원, 특화를 위한 민관의 노력 등도 실질적인 성패를 가르는 요소들이다. 기본 계획을 굳건히 세우고 지역별 실천 방침은 사업에 따라 유연하게 바꾸어가는 행정당국의 탄력적 태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도심 재창조'의 출발점에 선 대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특별취재팀=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광역시 연표(조선시대 이후)

1394 태조3년 대구현에 수성·해안·하빈면 영속

1466 세조12년 대구도호부로 승격

1590 선조23년 일본침약에 대비해 대구읍성(토성) 축조

1601 선조34년 대구도호부에 경상감영 설치

1658 인조36년 약령시 형성

1769 영조45년 서문시장 개장

1895 고종32년 대구부의 부청소재지가 됨

1906 광무10년 대구읍성 철거

1937 최초의 도시계획 수립

1940 대봉·삼덕·동인동 토지구획정리사업

1949 대구부에서 대구시로 개칭

1980 수성구 증설

1981 대구직할시로 승격

1988 달서구 신설

1995 대구광역시로 승격

1995 달성군 편입

▲ 헬기에서 내려다본 대구 도심은 왠지 밋밋하고 답답하다. 사진 가운데 아래 대우빌딩에서 왼쪽 위를 향해 뻗은 동성로의 윤곽이 보인다. 오른쪽 위 달성공원으로 연결되는 길이 읍성을 헐어내고 닦은 일주도로이고, 그 아래 길이 태평로다.

▲ 일제강점기 때 경상감영공원 앞길 모습. 지금은 사라졌지만 근대식 건물이 상당수였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의 곽병원 뒤에서 동쪽을 향해 찍은 사진으로 왼쪽이 경상감영공원이다.

▲ 대구시가 추진 중인 주요 도심 재창조 사업. 벌써 시작한 것도 있지만 아직 세부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게 많다. 한 지역에 격자형으로 집중된 도심의 형태나 역사·문화자산, 내재적 역동성 등은 전국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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