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교교한 밤, 동도 접안장에서 건너다보는 서도는 자못 삼엄하다. 168.5m의 독도 최고봉은 새파랗게 날이 섰다. 서도는 섬이 생긴 지 460만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시의 모습 그대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배경으로 달빛 서린 봉우리가 창끝 같다.
모처럼 바다는 잔잔해 능선과 골짜기가 커튼 주름처럼 뚜렷하다. 다만 불을 밝힌 어업인 숙소만이 사람 사는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서도는 동도에서 151m 떨어져 있다. 바람이 고요한 날이면 고함소리가 들리는 거리지만, 물결이 거친 날은 두 섬의 왕래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렇게 독도의 두 섬은 한 몸이면서도 개성이 뚜렷하다.
서도는 동도보다 조금 넓지만(8만8천740㎡)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동도는 경사가 다소 완만한 편이지만 서도는 섬 둘레 모두가 깎아지른 절벽이다. 동도는 섬의 표층이 다소 안정되어 있지만 서도는 아직도 돌이 구르고 바위가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먹을 물이 있기 때문에, 울릉도를 비롯해 멀리 죽변·삼척 등지에서 독도 근해로 고기잡이 나선 배들이 고단한 몸을 의지하는 곳이 서도이다. 이뿐만 아니라 처음 독도에 집을 짓고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도 서도이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독도 첫 주민이었던 최종덕씨는 1965년부터 해녀 5, 6명과 함께 전복·소라·미역을 따고 돔 등을 잡는 작업을 해오다가, 1968년에 처음으로 서도 해안가 바위 위에 토담을 치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올려 집을 지었다. 그 후 1981년에는 독도 사상 최초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가족을 데리고 들어와 거주를 시작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집은 여름철 작업 인원이 많을 때는 생활하기가 불편해서 조금 떨어진 벼랑 끝에 집을 한 채 더 지어 해산물 건조장을 겸해 썼다. 1987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86년부터는 사위 조준기·최경숙씨 내외가 한동안 삶의 터전을 가꾸어 나가기도 했다.
이후 정부에서는 동도 접안시설 착공과 함께 서도 어업인 숙소 공사를 시작하여 1997년 11월 6일 현 시설을 준공하기에 이르렀다. 어업인 숙소는 철근 콘크리트 3층 현대식 건물로 지었다. 1층은 발전기실과 기름탱크 시설이고, 2층은 바닷물 담수화시설과 화장실, 그리고 샤워장에 방 1칸, 3층에는 부엌 1칸과 방 3칸이 있다.
초기 어업인 숙소는 외형은 번듯했으나 배를 접안할 수 있는 선가장(船架場)이 마련되지 않았고, 설상가상 거주하려는 주민이 없었다. 게다가 생활의 근거가 되는 배가 없어 그동안 제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3년에는 선가장 시설을 갖추고 김성도 이장 내외가 거주하기로 한 이후 독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유인도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어촌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국민성금으로 마련한 1t 규모의 배 '독도호'는 독도 주민 정착에 큰 힘을 보탰다. 독도호는 2003년 11월 독도로 주소지를 옮긴 여류시인 편부경(52)씨의 노력으로 경주의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독도 사랑에 남다른 편부경 시인은 김성도씨 내외가 독도에 거주하려고 해도 조업에 필요한 배가 없어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민모금운동에 팔을 걷고 나섰다. 그 결과 20개 단체 158명이 모금운동에 동참, 1.58t 연안복합어업선 허가번호 KN71-041102 독도호가 바다에 뜨게 되었다.
후원자와 단체의 명판을 새겨 붙인 독도호는 봄부터 초겨울까지 미역과 홍합을 따고 문어잡이에 없어서는 안 될 서도의 재산목록 1호이다. 독도호에는 '독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성금으로 건조되어 독도에 주민이 상주하여 실제 영유권을 확실히 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동판 부조의 글귀를 새겨놓았다.
그 염원대로, 독도호는 오늘도 우리 주민이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살아있는 증거로, 독도 앞바다 맞바람을 받으며 선수(船首)를 꼿꼿이 치켜들고 있는 것이다.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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