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이면 우리 아파트 담장 옆으로 장이 선다. 여느 시골장 못지않아 시끌벅적한 인파와 갖가지 상품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가끔 금호강변에 운동 삼아 십여 리 걷고 나서 파장 무렵의 장에 들러 떨이를 사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하루는 백발 할아버지 한 분이 주위의 장사들이 전을 거둔 중간에 마분지에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당감 팜니다'란 글씨를 세워 놓고 단감을 팔고 있었다. 빈 상자 위에 세 무더기를 놓고 아무 말 없이 오가는 사람들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서 있었다.
"여보, 나 저 단감 먹고 싶은데?" 하였더니 아내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채소가게 쪽으로 가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뒤돌아보며 할아버지에게로 눈길을 준다.
"할아버지, 그거 다 얼마예요?" "한 무디기 오천 원에 팔았는데, 다 살려면 만원만 주소." 힘없고 메마른 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처량했다. 건성으로라도 깎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였지만 웬일인지 말없이 만원을 내밀었다.
결혼한 지 한 십년쯤 되었을까. 직장 근처에 아파트를 얻어 살 무렵이었다. 그때는 늘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가곤 했다. 그날도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가는 중에 웬 백발의 노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동차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었다. 참 대단한 어르신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딘가 안면이 많은 분 같아서 돌아보니 장인어른이 아닌가.
함께 힘을 합쳐 빨리 갈아 끼우고 집으로 모셨으나, 기어코 들어오시지도 아니하고 밖에서 물 한 잔만 마시고 그냥 돌아가셨다. 조금만 쉬었다 가시라고 해도 다음에 와서 먹고 자고 가겠다시며 한사코 떠나셨다. 그 후로도 몇 번 집을 늘려 이사를 했건만 장인어른은 끝내 그 약속 지키시지도 못하고 멀리 가셨다. 손자들 먹이려고 직접 농사지으신 단감을 트렁크와 뒷좌석에까지 가득 싣고는 팔 남매나 되는 아들 딸 집을 찾아 다 전해주시던 그 크신 사랑을 요즘에서야 알 듯하다.
요즘도 단감을 볼 때마다 손자 먹이려고 그렇게 애쓰시며 해마다 갖다 주시던 그 정성에 늘 가슴이 무겁다. 오늘 그 할아버지와 단감을 보니 갑자기 장인어른 생각이 나서였을까.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을까.
추석이 지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단감 한 무더기 사들고 산소라도 가봐야겠다. 박인로의 '조홍시가'가 문득 생각난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재 아니라도 품은즉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으니 글로 설워 하노라.
공영구(시인·경신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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