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행복/김종삼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오늘은 용돈이 든든하다

낡은 신발이나마 닦아 신자

헌 옷이나마 다려 입자 털어 입자

산책을 하자

북한산성행 버스를 타보자

안양행도 타 보자

나는 행복하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

이 세상이 고맙다 예쁘다

긴 능선 너머

중첩된 저 산더미 산더미 너머

끝없이 펼쳐지는

멘델스존의 로렐라이 아베마리아의

아름다운 선율처럼.

"십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밀려난 후 이 년 가까이 놀고 있다. 나이 탓인지 다시 취직을 한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그럭저럭 잡문 나부랭이라도 쓰면서 살아가자니 이것도 큰일이다. 쓸 자신도 없거니와 어디에 어떻게 적응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 고마운 일이 몇 번 터졌다. 몇몇 문예지에서 고료를 후하게 받아 본 적이 있었다. 문예진흥원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딴 데 비하면 얼마 안 되는, 아무것도 아닌 액수이지만 나로선 정신적인 희열이기도 했다. 한편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솔직히 말해서 시 문턱에도 가지 못한 내가 무슨 시인 구실을 한다고."

------------------------------------------------------

겹 텍스트의 이색적인 작품. 시작 메모가 시 속으로 들어와 텍스트를 완성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일종의 아이러니. 메모가 아이러니적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몇 푼 용돈에 이 세상이 고맙고 예쁠 정도면 평소엔 어떻게 살았을까.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와 산을 오르는 중년들이여. 많지 않은 퇴직금 증권에 묻었다가 다 날려버린 이 시대의 '귀때기 시퍼런' 아버지들. "긴 능선 너머/중첩된 저 산더미 산더미 너머/끝없이 펼쳐지는" 내일의 걱정에서 벗어나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주문처럼 외우다 보면 정말 내일이 행복한 내일이 될 수도 않지 않을까. 믿어보자, 믿어본다. 시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이학재 사장을 질책하며 외화 불법 반출에 대한 공항 검색 시스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12일 오후 경기 평택시 도심에서 두 마리의 말이 마구간을 탈출해 도로를 활보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고 경찰이 신속히 대응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