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야구에서 탈출구를 찾는다

악재 딛고 자신감 찾은 '삼성 야구'/밑바닥 헤매는 '대구 경제'의 귀감

가을야구가 한창이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둔 지난 25일, 안상수 인천시장이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이색적인 내기를 걸었다. 물론 SK 와이번스의 연고지 시장 자격으로 두산 베어스의 연고지 시장에게 제안한 내기였다.

"어느 팀이 이기고 지든 상관없이 진 팀의 연고지 시장이 이긴 팀의 모자를 쓰고 그 팀의 선수들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는 겁니다." 안 시장은 또 만약 인천 SK가 진다면 점심을 사겠으며 서울 두산이 진다면 오 시장이 반대로 해달라고 했다.

서울시장이 이 내기를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불황으로 가뜩이나 힘이 빠진 국민들에게 야구가 이런 작은 위안을 줄 수도 있구나 싶다. 안 시장도 좋지 않은 경제상황에서 시름이 많은 시민들 사이에 소소한 재미가 되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금은 20년 전 IMF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다. 때문에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이곳저곳에서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온 국민이 경제 때문에 우울하다. 그렇다고 어깨만 움츠리고 있어야 할까. 어려울수록 미래를 내다보고 힘들수록 재빠르게 위기를 관리해 나갈 일이다.

대구 삼성 라이온즈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길을 찾아보자. 지금의 답답한 경제상황이 올 시즌 초·중반 잇따른 악재로 팀 운영마저 어려웠던 삼성 라이온즈의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에 연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까지 올랐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올해 정규시즌 성적은 4위였다. 두산에 힘없이 지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요즘 삼성 라이온즈의 분위기는 밝다.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팀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좋다. 이유는 명확하다. 어렵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년 시즌만큼은 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올 시즌 내내 악재에 시달렸다. 자고 나면 부상선수가 생기고 외국인 선발투수는 죄다 퇴출되고 중심타선까지 일찌감치 붕괴됐다. 정규시즌 내내 살얼음판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악재 속에서도 '가을야구'까지 맛봤다. 과연 시즌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던 터라 따지고 보면 괜찮은 성적이다.

그러나 정작 성적보다 더 중요한 건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와 가능성을 내다본 한 해였다는 사실이다. 시즌 초반 양준혁-심정수-제이콥 크루즈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무너져 내리며 공격력에 구멍이 뚫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라도 박석민-최형우-우동균이라는 신인들의 발굴은 내년 시즌 전망을 밝게 해준다. 한국시리즈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우승 못잖은 성과를 거뒀다고 안팎에서 인정하는 이유다.

전력상의 열세를 위기관리 능력으로 극복해 나갔다는 점도 요즘 경제위기 상황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하다. 판단이 빨랐고 결단도 과감했다. 외국인투수의 방출이 그랬다. 7월 중순까지 삼성 라이온즈는 중하위권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년 시즌을 위해 대책이 필요할 때였다. 두 외국인 투수 웨스 오버뮬러와 톰 션을 동시에 퇴출시켰다. 이것이 삼성 선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투지를 다지게 해 이후 11경기에서 10승을 거두는 원동력이 됐다.

29일 단행한 선수단 개편도 과감하고 빨랐다. 일본인 1군 타격코치 영입, 2군 투수코치 교체, 일부선수 정리 등을 불과 2, 3일 만에 끝냈다. 감독과 단장이 모든 책임을 떠맡은 결과다.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의 능력은 위기에서 발휘되는 법이다.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삼성 라이온즈는 롯데 자이언츠와 달리 투수운용과 타선을 치밀하게 가을잔치에 맞춰 준비했다. 정규시즌과 달리 타선도 경험이 많은 노장들 위주로 꾸렸다. 노장선수들과 신인들의 조화, 노련한 경험과 젊은 패기의 어울림이 플레이오프 진출의 원동력이었다.

경제가 많이 어렵다. 대구는 특히 더하다. 요즘처럼 세상살이가 뒤숭숭할 땐 안상수 인천시장의 제안처럼 스포츠가 우울한 마음을 달래주기에 적격이다. 대구에서 한국시리즈를 볼 수 있었다면 더 큰 위안이 될 수도 있었을 터다. 이제 대구에서의 가을잔치는 끝났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2008시즌을 돌아보면 프로야구가 올해처럼 의미 있게 다가선 적이 있었던가 싶다. 한 시즌 야구를 돌아보며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대구가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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