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미정의 별의 별이야기]싱그러운 배우 이영은

동그란 얼굴에 큰 눈. 외모 자체가 순정만화 같이 싱그러운 배우 이영은(26)이 자신의 이미지만큼이나 싱그러운 영화에 출연했다. 이영은은 얼마 전 개봉한 '여름, 속삭임'(제작 케이컴퍼니 편장완 김은주, 감독 김은주)에서 부모를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대학원생 '영조'를 연기, 데뷔 후 첫 영화 주연에 합격점을 받았다.

'영조'는 자신의 지도교수의 서재를 정리해주며 시간차를 두고 그 집에 오는 '윤수(하석진)'와 교감을 나눈다. 영화에는 영조와 윤수의 이야기 외에도 영조가 서재에서 찾아낸 편지를 통해 교수 부부의 아날로그적 러브스토리가 교차돼 나온다.

"큰 영화는 아니지만 첫 주연 작품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여대생의 이미지를 연기할 수 있게 돼 기뻤어요. 여배우들이라면 이런 역할, 한 번 쯤은 꼭 해보고 싶을 걸요. 첫 주연작이라 긴장도 되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여름, 속삭임'은 제작비 5억원이 든 '작은 영화'다. 예산은 적지만 이와이 순지의 영화를 보는 듯 디테일이 살아 있다. 여류 감독의 손끝에서 화분, 다이어리 같은 생활 속의 사소한 사물들이 생명력을 얻었다.

"여자 감독님이라서인지 감성이 남다르세요. 많은 얘기는 못 나눴지만 여자입장도 많이 생각해주셨고요, 섬세하게 사물을 관찰하시는 감독이죠."

TV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쩐의 전쟁'등으로 신예 연기자로 주목받아 온 이영은은 큰 영화가 아닌, 여류 감독의 작은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시작했다.

"김은주 감독님은 처음 캐스팅할 때 이영은이라는 배우를 아예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영조'역할에 저같은 밝은 이미지의 배우를 생각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감독님의 의지와는 별개로 저는 회사를 통해서 이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의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죠."

영화는 지난해 여름 한 달간 전주에서 촬영된 것이다. 이영은이 KBS 일일극 '미우나 고우나'에 출연하기 전이다. 김은주 감독이 전주대 영상콘텐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라 전주대와 그 일대를 배경으로 했다.

영화 촬영장에서는 시간이 지체될수록 돈이 더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작은 영화인 '여름, 속삭임'은 드라마처럼 빠듯한 스케줄로 촬영했다. 바쁜 일정 가운데 빗소리 때문에 촬영이 지연돼 발을 동동 구른 적도 있었고, 막상 비오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해 제작진을 곤란하게 했다. 이영은은 "편지를 쓰는 장면에서 너무 피곤해 촬영 중 졸아버렸다"고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전했다.

힘들게 찍은 영화는 1년여만인 지난 10월 16일 전국 8개관에서 개봉했다. 경상도에서는 부산 서면 CGV에서만 관객을 만난다. 대구에는 개봉관이 없어 아쉽다는 그녀다.

이영은은 그렇게 고생을 하며 찍었던 첫 주연작이 행여 개봉하지 못할까 걱정도 많이 했다. 자신의 연기를 보면 아쉬움도 남지만 일단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쁨이 앞선다.

"4월에 전주에서 시사를 하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루는 감독님이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하신 거예요. 영화를 개봉할 수 있게 됐다고. 정말 기뻤죠. 첫 영화 주연이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 모습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의미가 깊은 작품이죠. 영화 속 의상도 거의 제가 산거에요. 여대생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코디 언니랑 동대문을 돌아다니며 같이 샀죠. 지금도 입고 있어요."

이영은은 2003년 데뷔한 이래 좀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렇다할 스캔들 하나 없이 차근차근 연기 내공을 쌓고 있다. '풀 하우스'에서는 얄미운 친구로 등장했고 '영화 '바르게 살자'에서는 4차원 마인드의 은행직원으로 나왔다. '미우나 고우나'에서는 '명랑, 엉뚱' 이미지를 벗고 떠난 남자를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여인으로 변신했다.

"사실 '미우나 고우나'의 '황지영' 역할은 많이 공감되지 않았어요. 그냥 이런 여자는 이럴 것이다 생각하며 연기했죠. 모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금 미련해지지 않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 변신을 했죠."

팜므파탈이나 악역도 해보고 싶다는 이영은이다. 그런데 도통 그에겐 그런 역할이 들어오질 않는다. 다음 작품인 코믹멜로영화 '구세주2'에서도 특유의 엉뚱함과 명랑함이 이어진다.

"마냥 철부지 같은 역할만 들어와서 고민도 했어요. 그런데 '바르게 살자'에 함께 출연하신 정재영 선배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역할들, 어차피 지금이니까 들어오는 거라고요. 나이 들면 못하게 된다고 말이죠. 그 말을 듣고 불평 없이 저에게 주어지는 배역을 즐기고 열심히 하기로 했어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은. 그는 기회가 되면 연극 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꿈을 드러냈다.

"한 장면 한 장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쭉 이어지는 연극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이어지는 감정을 연기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작년에 기회가 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요. 꼭 좋은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영은 스스로는 자꾸 변신하고 싶다지만 팬들은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마냥 싱그럽고 명랑하기만 스물여섯 이영은의 이미지는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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