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스트레스 백발

숱 많고 싱싱한 머리, 흑단처럼 반짝이는 검은 머리는 젊음의 대명사다. 흔히들 헤어스타일이 용모의 70, 80%를 좌우한다고들 한다.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 내리고 겨울숲처럼 비어가기 시작하면 염색이니, 가발이니 온갖 애를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오는 백발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고려 말 문신 禹倬(우탁:1263~1342)의 '白髮歌(백발가)'가 노래하듯 이 세상 그 누구도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을 피해갈 수 없다.

명창 박녹주가 불러 당대 수많은 청중의 심금을 울렸던 短歌(단가) '백발가'도 '고금 역대 헤아리니 公道難戒(공도난계) 백발이요~'라고 노래했다. 백발이란 게 누구나 따라야 하는 길이되 미리 경계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극심한 공포나 정신적 충격으로 하룻밤 새 백발이 돼 버린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더러 접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과장됐을 뿐 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룻밤 새는 아니라 해도 단기간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미 해군 정보국에 근무하면서 한국에 북한 관련 정보를 건네줬다 스파이 혐의로 옥살이를 했던 로버트 김(김채곤)의 부인 장명희 씨. 당장 집세를 걱정해야 할 만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그녀의 새카맣던 머리카락은 몇 년 만에 검은 머리 한 올 없는 새하얀 백발로 변해 버렸다.

미국 대선을 4일 앞둔 지금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머리카락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선 레이스 출발 당시만 해도 새카만 머리로 45세 나이보다 10년은 젊어보였던 오바마가 2년도 안 되는 새 흰머리 성성한, 영락없는 중년 남성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스트레스를 주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긴 오바마 자신도 최근 한 만찬장에서 민주당 내 경선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과의 길고 힘겨웠던 싸움이 흰머리의 주원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쌓이는 낙엽처럼 스트레스도 몇 겹은 더 쌓이는 요즘이다. 마침 오늘은 전 국민적 기념일(?)인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마음속 찌꺼기들일랑 시원스레 풀어 버리시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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