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서울주재 지방신문 기자

필자는 지방중심론자도, 수도권중심론자도 아니다. 그냥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경북 오지의 산골마을에 살거나 혹은 낙도에 사는 사람도 공평하게 국가의 보살핌을 받고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대도시의 잘사는 사람과 시골 촌구석의 못사는 사람의 생활이 '평등'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잘살 수 있는 기회는 물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불가피하게 그런 기회마저 갖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정도는 대학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필자는 19년째 지방에 본사를 둔 '지방신문' 기자 노릇을 하면서 수도권에 살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수도권과 지방의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어중간한 위치에 있을 때도 있다. 수도권의 집값이 오르면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집값도 따라 오른다면 나로서는 반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참여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 들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주변 아파트값이 쥐꼬리만큼이지만 급등한 적이 있다. 그때는 수도권에 사는 특혜를 받는 듯했다.

처음 서울에 파견근무를 갔을 때는 서울시내에 살았다. 그러다가 점점 외곽 쪽으로 이사를 갔고 급기야 10여 년 전 아예 경기도로 밀려났다가 지금은 인천시에 자리를 잡았다. 몇 차례 이사 다닌 이력을 늘어놓는 것은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도권 집중에 따른 간접적인 피해자라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수도권에 돈과 사람이 집중되면서 집값이 폭등했고 서민들은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고 수도권의 교통정체는 심화됐다. 그 해결책으로 정부가 집중화·과밀화 해소방안으로 신도시를 곳곳에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값이 오르긴 했지만 그렇다고 주민생활이 나아진 것은 절대 아니다. 수도권 주민의 입장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로 주변에 있던 공장이 증설되고 공해가 발생하고, 교통상황이 악화되는 등의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것은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다. 이웃주민들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수도권에 대한 투자허용 조치다.

정부는 이번에 수도권 규제를 풀면서 내놓은 이유 중의 하나는 지난 30년간 수도권을 규제했는데도 지방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책임있는 경제팀 수장이 내세운 수도권 규제완화의 명분이다.

과연 그럴까. 그는 수도권을 묶어둔 것은 수도권 과밀화가 가져 올 부작용과 폐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 지방발전대책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실효성 있는 지방대책을 마련한 것은 그나마 참여정부 때의 혁신도시와 공기업 지방이전 방안이 최초였다.

며칠 전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은 "선(先) 지방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완화'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선후'는 중요도에 관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정부는 수도권을 지방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차별의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구분없이 어디서나 잘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가경영의 기본이라는 사실은 초등학생들도 아는 상식이다. 이 정부는 초등학생의 인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정책을 내세워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이간질하고 있다.

서명수 정치부차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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