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DNA 관련 특허가 해마다 4천개 이상 승인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두 시간에 하나꼴로 늘어나는 셈이었다. 인간 게놈 속의 유전자 수가 3만5천개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게놈의 20퍼센트가 이미 사유화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넥스트」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이원경 옮김/김영사/517쪽/1만3천원
살다 보면 여러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가끔 있다. 미국 드라마 「ER」의 PD는 영화 「대열차강도」의 감독과 동일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는 재난 영화 「트위스터」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며, 「쥬라기 공원」 「타임라인」 「스피어」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인기 소설가이기도 하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거기에다 큰 키, 잘생긴 외모에 하버드표 전문의 자격증까지 소유한 소위 '신의 시샘을 받을 만한' 남자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치고는 비교적 빠르다고 할 수 있는 66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유재하가 요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보다 그가 만들어놓지 못하고 가버린 노래들이 더 아깝다는 서글픈 농담을 하곤 했다. 크라이튼은 그래도 만년에 「먹이」 「넥스트」 등 여전히 재기와 비판의식 넘치는 수작들을 남겨놓고 부고를 전했으니 팬의 입장에서 조금은 덜 쓸쓸한 편이다. 새삼 그의 재능과 상상력, 지칠 줄 모르던 프로 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진다.
크라이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존 그리샴의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변호사인 그는 크라이튼이 그랬던 것처럼 해박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법정 소설들을 양산해왔다. 「의뢰인」이나 「펠리컨 브리프」 「야망의 함정」(원제: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등은 할리우드발 흥행영화이기 이전에 그리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 준 베스트셀러 소설들이었다. 그리고 그 통속 소설들은 너무나 격조 있게 쓰여진 나머지 대중들로부터 '그리샴이야말로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을 잇는 진정한 미국작가'라고 하는 애정 어린 찬사를 받게끔 만들어 주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틀스의 명곡은 웬만한 교향곡 두세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말한 바 있다. 크라이튼의 「넥스트」나 그리샴의 「타임 투 킬」 같은 작품은 미국사회의 치부를 향한 진지한 항의와 인간에 대한 깊은 예의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비틀스의 명곡과 같은 예우를 받아 마땅할 만한 것이다. 고로 그런 책의 독서는 웬만한 순수문학 두세권보다 더욱 알찬 무언가를 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어린 것은 젖은 수건에 감싸인 채 누워있었고, 친척들은 아이 주위에서 울고 있었다. …… 아이의 얼굴은 옹이가 지고 갈가리 찢어진, 피에 절은 펄프 같았다. 퉁퉁 부은 두 눈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타임 투 킬」 존 그리샴 지음/김희균 옮김/시공사/770쪽/1만4천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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