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시험공부 대신 사과서리

선미 미선이 나 삼총사였던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한 반을 했다. 시골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밤마다 모여 시험공부를 했다. 공부하다 잠이 오면 마당에 나가 별을 보며 찬 공기를 마시면 잠이 확 달아났다. 그런데 미선이가 제안을 했다. 선미네 집과 가까운 곳에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인 병난네 과수원이 있었다. 꽃 필 때부터 사과가 익을 때까지 지나다니며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간이 큰 미선이가 "야, 이리와 봐. 우리 사과 서리하러 갈래?" 귓속말을 했다. 선미와 나는 사과는 먹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평소에 과수원에는 동네에서 제일 무서운 셰퍼드가 매여 있었고 서로 눈동자만 굴리며 바라보고 있는데 미선이가 "걱정마. 들키면 내가 책임질게. 다 내가 했다고 할게. 나만 믿어." 우리는 미선이만 믿고 자정을 넘은 시간, 살며시 여닫이문을 열고 발뒤꿈치를 들고 마루를 내려와 과수원으로 향했다. 달빛에 과수원으로 나 있는 길이 우리를 위해 나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때는 과수원 들어가는 입구에 문이 잠겨 있었는데 그날은 주인이 깜빡 잊었는지 문이 열려 있었다. 셰퍼드도 없었다. 며칠 전에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서 한곳에 모아 놓고 낮에는 햇볕을 쏘이고 밤에는 짚으로 덮어두었다.

학교 오고 가는 길에 미선이는 눈여겨보았는지 서슴없이 사과가 있는 곳으로 갔고 우리는 사과 서리를 시작했다. 선미는 자루를 벌리고 나는 망을 보고 미선이는 사과를 주워 담았다. 나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데 미선이는 겁도 없이 양손으로 사과를 주워담고 있었다. 나는 망을 보며 "야 그만 가자" 해도 미선이는 들은 척도 않고 거반 반 자루를 담아 나오는 것이었다. 그 길로 걸음아 나 살려라고 달려 선미네 방에 가서 "살았다"는 안도에 한숨을 쉬고 사과를 실컷 먹었는데, 그때 사과 맛이 어찌나 맛있던지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시원 달콤한 물이 입안 가득 고이던 그때 사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해 겨울 우리는 사과 덕분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 같고 고등학교는 같이 가지 못했지만 그때 그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사과철인 가을만 되면 그때 일이 생각나고 내 친구 선미 미선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언제 한번 만나 옛날 이야기하며 밤을 보내고 싶다.

오늘은 사과 한 상자 사서 중학생인 딸과 먹으며 옛날 이야기를 하리라.

오월선(김천시 신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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