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카고를 가다] ③공동체 안에서 소통하라

빈곤·장애·인종 아우르는 커뮤니티가 세상을 바꾸는 힘

▲ 메이폴거리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있는 시카고예술대 학생들.
▲ 메이폴거리에서 벽화작업을 하고 있는 시카고예술대 학생들.
▲ 시카고 커뮤니티아트의 출발지 제인 애덤스의 헐 하우스.
▲ 시카고 커뮤니티아트의 출발지 제인 애덤스의 헐 하우스.
▲ 롭 렌츠
▲ 롭 렌츠 '온워드프로젝트' 디렉터.

시카고 공공예술의 근간은 커뮤니티아트(소통을 중시하는 지역 공동체예술)다. 커뮤니티아트는 예술과 대중의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는 예술운동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카고 커뮤니티아트에서 대중은 주어진 예술작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예술 활동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능동적 주체다.

현재 시카고 공공예술은 커뮤니티아트의 영향으로 빈곤, 청소년, 장애, 여성, 인종 등 지역공동체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아우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시카고공공예술그룹, 갤러리37, 시카고예술대가 펼치는 다양한 커뮤니티아트를 소개한다.

▨시카고 커뮤니티아트 역사

1900년 초 제인 애덤스가 헐 하우스(Hull House)에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도자기, 미술, 연극, 글 배우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시초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제인 애덤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빵도 원하지만 꽃도 원한다"며 사재를 털어 문화운동을 시작했다. 헐 하우스에서 시작된 커뮤니티아트는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967년 시카고에서 흑인미술운동이 시작되는 원동력이 됐다. 흑인 거주지역인 브론즈빌에는 흑인미술운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1970년대 벽화작품이 남아 있다. 시카고 벽화의 전형적인 특징(2차원 평면과 3차원 입체 표현이 공존)을 보여주는 'time to unite'는 미국 정부에 흑인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동시에 흑인 스스로 사회 환경을 개선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black women emerging'은 흑인벽화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저스틴 더반의 작품이다. 총을 든 여성은 흑인여성의 힘, 3색(적색-피, 흑색-흑인, 녹색-지구) 깃발은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저항을 상징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과연 미국은 평등사회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시카고공공예술그룹(Chicago Public Art Group)

40여년 전 20여명의 작가들이 만든 단체로 시민들이 참여하는 문화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시카고시 지원을 받지 않고 각종 기금을 신청해서 운영 자금을 조달한다. 현재 3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룹의 멤버 올리비아 구드(Olivia Gude) 시카고 일리노이대 교수는 "시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재원 마련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활동은 오히려 자유롭다. 시카고에는 인종문제뿐 아니라 빈곤 등 다양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함께 호흡하는 도시문화를 만든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공공예술그룹이 최근 커뮤니티아트 프로그램을 진행한 곳은 hilliard 아파트다. 독일 바우하우스 출신 건축가 골드버거가 설계한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로 독특한 건축 형태가 눈길을 끄는 곳이다. 1963~1966년 흑인들이 입주하면서 빈곤과 범죄문제가 나타나 슬럼화된 것을 최근 재건축했다.

이곳에서 시카고공공예술그룹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10월 말까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 청소년들과 함께 삶의 공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동네 역사 기록 작업을 펼쳤다.

▨갤러리37

문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을 20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 갤러리37은 장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해주는 아웃사이더아트인 '온워드(Onward)프로젝트'를 2004년 시작했다. 아웃사이더아트는 가난, 장애로 인해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펼치는 예술활동으로 커뮤니티아트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온워드프로젝트'는 갤러리37 내 작은 교실에서 8명의 작가로 출발했지만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참여 작가가 35명으로 늘어나는 바람에 시카고 문화센터로 자리를 옮겨 진행되고 있다.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도 갖추고 있다. 참여 작가들은 장애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뉴욕, 파리 등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면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참여 작가 자민 자두아(23)는 "여기서 활동한 지는 2년쯤 됐다. 모피나 가죽을 이용해 옷과 가방, 스카프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온워드프로젝트가 장애인 재활은 물론 경제적 독립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술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카고예술대

시카고예술대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메이폴거리에서 커뮤니티아트를 펼치고 있다. 메이폴거리는 마틴 루터킹이 살해된 후 폭동이 많이 일어났던 흑인 주거지역이다. 학생들은 지난해 메이폴가든을 조성하고 입간판에 지역 청소년들의 자화상을 그려 넣는 작업을 했다. 올해는 지난 10월 말부터 벽화작업을 하고 있다. 벽화에 그릴 내용은 동네 청소년, 주민,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워크숍에서 정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디디(55)씨는 "처음에는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했지만 이제는 모두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민들은 벽화작업을 '희망의 벽'으로 부른다.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는 것은 의미 일이다"고 말했다.

드레아 호웬슈타인(Drea Howenstein) 시카고예술대 교수는 "전통적인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커뮤니티아트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커뮤니티아트에서는 관계맺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나눈 대화와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다. 커뮤니티아트를 결과물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고 설명했다.

시카고에서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 "작가 선발, 길러리 캐스팅도 해요"

'온워드프로젝트'는 미국 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취급받고 있다. 롭 렌츠(Rob Lentz·사진) 온워드프로젝트 프로그램 디렉터를 만나 작가 선정과 관리 등 운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 작가에게 미술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작품 활동은 사회와 소통하는 한 방법이다. 그들은 이미지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 선정 방법은.

"갤러리37 방과 후 프로그램 졸업생 중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하거나 미술치료사나 장애시설 등에서 추천받는다. 최근에는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서도 뽑았다."

-작품에 대한 미술시장 반응은.

"작가들이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스타일이 독특하다. 미술품 애호가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고 있다. '온워드프로젝트'가 배출한 최고 작가 제임스 알렌(James Allen)은 주요 컬렉터 대상이다."

-작가 생계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나.

"작품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작가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가격으로 그림을 판매한다. 작가들이 장애보조금을 받고 있어서 일정 수입이 넘으면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다. 이 점을 고려해 작품 판매수익은 매달 일정액씩 나누어 지급한다."

이경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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