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사과 건네며 말 걸던 잘생긴 남자

빨간 홍옥을 보면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내가 갓스물이 되던 해, 통영의 어느 섬 마을 분교에 발령을 받아 근무 중인 아버지께 다녀오는 길이었다. 지금은 다리를 놓아 육지처럼 되었지만 그 시절엔 배를 이용해야만 했는데 부산에서 충무까지 네 시간은 족히 걸렸다. 배 안에는 김밥과 음료, 과자, 사과 등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배를 처음 타보는지라 나는 뱃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출렁이는 물결과 그 물살에 부딪혀 반짝이는 햇살에 심취되어 있었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한 청년이 나의 무아를 깨우며 다가와 빨갛게 윤이 나는 탐스런 홍옥 하나를 불쑥 내밀며 "얼굴이 낯선 걸 보니 섬 지방 사람이 아닌가 봐요"하며 말을 걸었다. 엉겁결에 사과를 받아들기는 했지만 나는 사과를 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명절이 아니면 사과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기에 홍옥의 신맛에 익숙하지 않아 그 나이까지 사과를 먹지 못했다.

나는 사과를 안 먹는다고 말을 할 수는 없어 조금 먹는 척을 하며 뒤로 감추고 있다가 그 청년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얼른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 청년은 커다란 사과 하나를 우적우적 잘도 씹어 먹었다. 목적지에 다다라 그 청년의 관심을 뒤로하고 왔지만 빨간 홍옥을 보면 지금까지도 왠지 얼굴이 성실해 보이던 그 청년의 얼굴이 겹쳐 보이곤 한다.

그 귀한 사과를 아니 그 청년의 마음을 훌쩍 바다에 던져버린 미안함과 함께 내가 그 사과를 맛있게 먹었더라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은 해본다. 홍옥처럼 발그레한 하나의 추억이다. 정현조(대구 동구 방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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