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천천히 할수록 좋다'
프랑스 속담이다.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 단테스는 최악의 감옥 샤토 디프에서 탈출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친구들에게 차례로 복수한다. 그는 이 모두가 자신의 약혼녀를 빼앗기 위한 음모였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의 칼날을 갈며 캄캄한 지옥을 견딘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팀 로빈스)는 19년간 탈옥을 준비한다. 포크레인으로도 부술 수 없다는 교도소 벽을 스푼과 작은 망치로 허문다. 매일 밤 흙을 파내던 19년은, 그의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교도관들의 가혹한 행위와 교도소장의 반인륜적 행위, 수감자들로부터 받던 핍박은 그에게 자유를 향한 열망만 키워줄 뿐이었다.
감옥의 첫날밤. 짐승들 속에 발가벗고 감방에 들어와 철창이 닫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절망이 밀려와 울지 않을 수 없다는 그 밤, 앤디 듀프레인은 울지 않는다. 첫날 이미 그는 감옥에서 나갈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죽인 죄로 갇힌다. 실제 죽이고 싶어 총까지 구입해 아내가 정사를 나누는 창 아래를 서성거렸다. 그가 정말로 아내를 죽인 것일까. 영화는 그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살인죄보다 더한, 그가 아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가 그가 죄수들에게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중 아리아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를 틀어주는 것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하인 피가로가 초야권(영주가 신랑보다 먼저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권리)으로 약혼녀를 가로채려는 바람둥이 백작 알마비바를 혼내주고 무사히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내용의 오페라이다.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선율은 운동장에 모인 죄수들에게 한 마리 새가 되어 담장 너머 날아오르는 느낌을 주었다. 또한 피가로가 되지 못한 앤디의 한과, 자유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잘 녹아든 장면이었다.
앤디의 자유의지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상징이 벽을 가린 여배우의 포스터이다. 처음에는 리타 헤이워드, 나중에는 라켈 웰치의 브로마이드로 자신이 파낸 구멍이 안보이게 한다.
라켈 웰치는 '공룡 100만년'(1966년)의 여주인공이다. 그녀는 미국 역사상 가장 완벽한 몸매를 가진 여배우로 통한다. '공룡 100만년'은 중요한 부분만 가린 그녀의 관능미를 내세운 영화로 관객을 공룡이 아닌 그녀의 몸매에 혼이 빠지게 했다.
화가 박철호는 라켈 웰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배경에는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칠했고,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가 흘러나오는 교도소 창문을 그려 넣었다.
라켈 웰치는 자유를 향한 통로이자, 영원한 안식처이고, 유토피아이다. 지금 당장 손에 넣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 쟁취할 자유의지를 가장 욕망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화가는 "마지막 앤디의 대사처럼 희망이라는 단어처럼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삶에 대한 강한 욕구입니다"라고 긍정했다.
그러나 시인 이규리는 '희망은 위험한 일이지만 더럽고도 달콤한 일'이라고 적고 있다. "쇼생크는 살기위해 서로의 눈을 찔러야 하는 공간이며, 우리는 날마다 탈출을 꿈꾸지만 감시와 모순의 레이더망에서 한 치도 꼼짝할 수 없는, 쇼생크에 살고 있는 가련한 존재"라고 했다.
1연의 산문형식과 띄어쓰기를 무시한 방식은 쇼생크에서의 갇힘과 부자유를 형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희미한 꽃'은 쇼생크 안에서 드물게 만난 우정(래드)처럼 잠시 오는 기쁨 같은 것을 말하며, '단단한 벽에 구멍 하나를 내는' 행위는 또 다른 탈출을 꿈꾸는 화자의 '희망'이며 '불안'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우리는 모두 쇼생크에 던져진, 영원한 탈출을 꿈꾸는 존재이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쇼생크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
감독:프랭크 다라본트
출연:팀 로빈스, 모간 프리먼
러닝타임:142분
줄거리:촉망받는 은행 간부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슨)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옥 같은 교도소 쇼생크에 수감된다. 악질 범죄자들 틈바구니에서 고통을 받던 앤디는 어느 날 간수의 세금을 면제받게 해주는 덕분에 교도소의 비공식 회계사로 일하게 된다. 해마다 간수들과 소장의 세금을 면제받게 해 주고 재정 상담까지 해 준다. 교도소 소장은 죄수들을 이리저리 부리면서 검은 돈을 긁어모으고 앤디는 돈을 세탁하여 불려주면서 그의 돈을 관리한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
'어대명' 굳힐까, 발목 잡힐까…5월 1일 이재명 '운명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