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자부심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국가 공인' 파출부나 마찬가지죠."
지난 7, 8월 60만원을 내고 6주간 대구 달서구의 한 요양보호사 양성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조모(28·여)씨. 요양보호사 자격증만 따고 나면 다섯살, 한살짜리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틈틈이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격증을 받아든 조씨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까지 면접을 본 7곳의 재가노인복지시설과 노인요양보호시설 중 4곳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인 노인들을 데려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누구나 취업이 될 것처럼 정부에서 홍보해 자격증을 땄더니 '장롱 자격증'에 불과했다"고 씁쓸해했다.
◆넘쳐나는 자격증=지난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 이후 쏟아져 나온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숫자가 장기요양 대상 노인들보다 훨씬 많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요양보호사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제도시행 전에 비해 크게 악화되면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요양보호사 수는 1만8천500명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 1만215명에 비해 8천여명이나 많다. 더 큰 문제는 올 초부터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한 대구의 요양보호사 양성기관 53곳에서 평균 6주 간격으로 요양보호사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시는 올해 말까지 필요한 요양보호사 수를 최대 2천500명으로 추산했지만 현재 요양보호사 수는 필요 인원보다 7배가 넘는다. 이런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고 있지만 생활정보지 등에는 '취업률 100%, 요양보호사에 도전하라'는 문구가 버젓이 실려있는 실정이다.
국가 대신 이뤄지는 노인복지서비스가 시장논리에 따르다 보니 꼼수도 빈번하다. 일부 요양시설의 경우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신규 채용을 선호하거나, 노인들을 데려올 경우 수당을 더 얹어준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일부 종합사회복지관에는 '관리 노인 리스트'를 넘겨줄 수 없냐는 요양시설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더 나빠진 근로 환경=지난 7월 중순부터 재가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49·여)씨는 요즘 어깨결림 등으로 더이상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파출부를 했으면 차리리 돈이라도 더 벌었을 것"이라며 "대상자가 부족하다보니까 요양보호기관 간에 경쟁이 치열해져 청소, 빨래, 반찬 마련 서비스까지 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급여가 적절치 않아 '1인 전담 요양보호사'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적잖다. 최모(55·여)씨는 경제력있는 노인 1명을 하루 12시간 전담하면서 월 100여만원을 받는다. 최씨는 "요양기관에서는 하루에 2명의 노인을 돌보게 돼 있는데 1명을 전담할 경우 훨씬 자유롭다"며 "보살핌을 받는 노인들도 자신에게만 신경을 써주는 형태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은 최근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후 요양보호사의 임금 및 근로조건이 열악해져 임금은 제도 시행 전보다 40~50% 정도 삭감됐고, 재가복지시설 요양보호사는 월 50만~80만원의 시급제 비정규 노동직으로 전락했다"며 비판했다.
노인요양시설 관계자들은 "제도 시행 초기여서 요양기관, 양성기관 등의 문제가 너무나 많다"며 "무엇보다 요양보호사만 대량 양산하는 양성기관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고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올 7월부터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원하고 1, 2, 3등급을 판정받은 대상자는 재가시설, 요양시설, 단기보호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국고 보조와 건강보험료로 운영되지만 등급, 생활수준에 따라 본인 부담액이 일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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