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뉴 이어! 아마 지금쯤 외계인이 지구 옆을 지나가고 있다면 "지구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하고 몹시 궁금해할 것이다. 아시아, 유럽 할 것 없이 전 지구가 들썩이는 '뉴 이어 시즌'인 것이다. 지구인 모두 새해엔 배고프지 않기를,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아름다운 사랑을 하기를, 제발 더 행복하기를 꿈꾼다.
새해에는 좀더 행복한 마법에 걸리기 위해 누구나 특별한 마법의 주문을 찾아해멘다. 꿍따리샤바라바·요콤바리꿈바리…. 무얼까, 어디 가면 찾아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북극곰이 사는 알래스카로, 어떤 사람은 열대 아프리카의 사막으로 새해의 특별한 주문을 찾아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제작년 겨울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그에 있었다. 해발고도 2천m 이상의 눈덮힌 알프스산과 76개의 호수가 어우러져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는 잘츠카머구트의 작은 호수마을 '할슈타트'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30일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해가 질 때까지 종일을 달려 할슈타트로 갔다. 그러나 마을의 작고 예쁜 펜션과 호텔들이 이미 모두 관광객들로 꽉 차버렸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다시 잘츠부르그의 어수선한 호스텔로 돌아온 나는 새해의 특별한 마법의 주문을 어디 가면 찾아낼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딱 하루. 바다도, 사막도 너무 멀었다. 1월 1일 첫 해가 떠오를 때 눈덮힌 알프스산자락 어디쯤에 서 있는 건 어떨까. 하지만 저 거대한 알프스산의 어디쯤 나의 자리가 있을까.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배낭을 메고 컴컴한 새벽 거리로 뛰쳐나왔다. 진짜 방랑자처럼 터벅터벅 걸었다. 기차역에서 스위스로 가는 제일 빠른 표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종일 기타를 갈아타며 스위스의 깊숙한 알프스산 골짜기까지 열심히 달려갔다. 그러나 늦은 밤 겨우 도착한 그 곳은 알프스 융프라우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악열차가 이제 막 마지막 운행을 끝낸 '인터라켄'이라는 호수마을이었다. 나는 기차역에 주저앉았다. 몇 시간 후면 새해가 시작될 즈음이다.
그 마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급호텔들은 번쩍거리는 작은 전구들로 휘감겨 있었고 차가 다니는 대로까지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들었고 공원마다 사람들이 모여 축포와 샴페인을 준비했다. 갑자기 살면서 겪은 외로움 중에 가장 지독하고 차가운 외로움이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작은 게스트하우스까지 방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잠자리를 찾아헤매야 했다. 산골짜기가 아니라면 제발 호수가 보이는 방이라도 구할 수 있길 기도했지만 이미 나에겐 선택권이 없는 상황이다.
'알프 로지'. 그날 밤 나를 구원해 준 게스트하우스였다. 1층에는 이미 맥주에 취한 사람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삐걱거리는 계단 위의 2층에는 지저분한 카펫이 깔린 답답한 복도에 오래된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어둡고 붉으스럼한 불빛 속에 우리나라 여관같은 분위기의 음산한 방문들이 나를 쳐다봤다. 당연히 호수가 보이는 창문 같은 건 없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혼자 호숫가를 걸어볼까. 사람들이 쏘아올리는 축포를 구경갈까. 샴페인을 한 병 사와서 혼자 마실까. 창밖에서 펑펑 불꽃 터지는 소리가 났다. 후다닥 시계를 보니 11시 55분이었다. 나는 코트를 집어들고 쿵쾅쿵쾅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해피 뉴 이어!" 시커먼 피부의 흑인 여자가 갑자기 내 얼굴을 낚아채어 뺨에 키스를 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달려든 낯선 사람들의 키스 세례가 이어졌다. 맥주잔이 날라져왔다. 나는 누가 준 맥주잔인지도 모르고 꼴딱꼴딱 '원샷'을 하고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처럼 그곳 사람들과 어깨를 껴안으며 2007년의 마지막 5분을 정신없이 보냈다. "쓰리! 투! 제로! 해피 뉴 이어!" 정신이 몽롱해졌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마법의 주문을 외치고 있었다. 나는 왠지 새해에는 행복해질 것 같았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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