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잠무카슈미르에 속하는 레(Leh)는 해발 5천m를 훌쩍 넘는 길을 지나야 닿을 수 있다. 육로로 레에 가기 위해선 공용 버스를 타든 지프를 렌탈하든 1박을 해야 한다. 그나마 겨울이면 그 길도 닫히고 만다. 해발 4천m를 넘으니 서서히 내 머리가 옥죄어 왔고, 캠핑 사이트에선 고산 증세로 잠이 들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 선택된 여행 기억은 극심했던 두통보다 역동적으로 변하던, 하늘 닿는 그 길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여기로 오는 길은 난생 처음으로 자연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알게 해줬어. 고지대에 들어서 있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정말 힘껏 뛰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이 하늘이 가까이 있더라. 그런데 나는 그 하늘을 보며 '어렸을 적 하늘색이라고 적힌 크레파스로 하얀 도화지를 칠하곤 했던, 그야말로 개념적으로 각인해 놓은 이상적 하늘색, 바로 그 색 같네.'라고 중얼거려 버렸어. 인공적인 하늘색이 전복시켜 버린 진짜 하늘빛에 대한 표현. 대자연 앞에서야 비로소 자연의 일부임을 실감하게 되는 한낱 미물인 인간이 그 위대함을 표현하는 데 이다지도 인색하고 어색했다는 걸 깨달았어. … …. 작은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멍하니 밖을 내다보니 게스트 하우스 정원에 가득한 야생의 꽃과 풀들이, 내키만한 해바라기가 가득하다. 근데 그 순간, 그 밤의 정경과 정막이 미치도록 고요한 거야. 갑자기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뻗어 그 행복을 끌어안으려 허우적거렸어. 이 시간이 지난다 해도 나는 이렇게 순간을 붙잡고 표현하려 애쓸 수 있을까? -라다크(Ladakh)왕국의 옛 수도, 레에서"
얼마 전 가야산 등반을 나섰다가 고불고불 산길을 벗어나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산들의 위용을 보고 '와, CG같다.'라는 짧은 탄성을 내뱉은 이후, 나는 말라 비틀어져 가루가 되어버린 감수성이라는 놈을 대면해 버렸다. 세상이 삭막해 감성도 메말라 버렸다고 일소했지만, 실재를 비실재의 그것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초라한 감상은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오는 것임을 여실히 알고 있다. 그때 적은 엽서를 찾아 읽으니 문득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외부의 자극, 특히 일상적 감각을 순간 찡하게 만드는 것들 앞에서 그 느낌을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이 특별한 환경이나 여유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그 환경과 여유를 갖게 되더라도 결코 그것들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방정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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