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1월 단돈 5천만원을 쥐고 스리랑카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공장에서 잠을 자가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는 대기업이란 소리도 듣습니다. 허허허!"
스리랑카에서 포장재 전문생산업체 '코리안 스파 패키징'(KSP)을 운영하고 있는 장창욱(60) 대표는 "한국에서도 물론 기회는 있었겠지만 해외 진출은 분명 새로운 인생을 열어줬다"고 16년간의 이국생활을 회고했다. 마흔을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해외에서 난생 처음 도전한 제조업이었지만 스리랑카 최대의 포장재업체를 키워냈다는 자부심이 은연중 묻어나는 말이었다.
행정수도인 콜롬보(Colombo)에서 30km쯤 떨어진 파나두라(Panadura)시에 있는 장 대표의 회사는 종이상자용 골판지와 포장용 비닐을 생산한다. 지난해 영업매출액은 미화 1천500만달러 수준. 창업 이듬해인 94년 매출이 30만달러였으니 16년새 50배나 성장한 셈이다. 전원 현지인인 종업원도 300여명에 이르러 현지에서는 '다니고 싶은 대기업'으로 꼽힌다.
장 대표의 '인생 2막 성공기'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실과 함께 경제학도(영남대 경제학과 70학번)다운 정확한 시장 판단이 뒷받침됐다.
"처음에는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의류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제가 전부터 알던 분야인 포장재산업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이더군요. 얼마 안 있어 스리랑카의 홍차 수출이 급증하면서 회사는 쉽게 성장궤도에 들어섰습니다."
다양한 경력도 빠른 현지 적응에 큰 밑천이 됐다. 학사장교(ROTC)로, 육군 중위로 예편한 그는 1976년 산업은행에 입사했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직장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시에는 '수출역군'이라는 말이 유행어였던 시절입니다. 저도 2년 만에 꽤 잘나가던 무역회사로 옮겼는데 1980년 부도가 났지요. 그래서 개인사업을 시작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할 팔자를 타고 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한국 지자체들과 정부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국민소득이나 경제력은 한국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기업환경은 스리랑카가 오히려 한국보다 낫다는 것.
"여기 투자청(Board of Investment)은 제가 처음 왔던 90년대 초반에도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투자청에 가서 애로사항을 말하면 세무서나 경찰 등 기관은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도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기업 프렌들리 정책은 당시부터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장 대표는 우리 청년들이 해외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고들 하더군요. 그런데 왜 국내에서만 직장을 구하려 합니까? 나와서 보면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너무 많습니다. 도전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이어졌다. "흔히 외국이라면 언어문제부터 떠올리는데 사실 언어는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정도면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획력과 성실성입니다.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실천에 옮길 수만 있다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서툰 영어지만 투자청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다 보니 '마약밀수만 아니면 무엇이든 돕겠다'고 할 정도로 신뢰를 쌓게 됐습니다."
경북도 해외자문관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그럼 어디가 유망해보이느냐"는 질문에 대뜸 아프리카를 꼽았다.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도 좋아보이지만 자본이나 기술이 부족하다면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21세기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역시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창업 이후 계속 연장돼왔던 법인세 면제 기간이 올 3월에 만료되는데다 스리랑카도 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직원들의 야근이 줄면서 공장 직원들을 위한 차(茶) 구입비용이 30%나 줄었거든요. 지금도 생산량의 일부는 해외로 직접 수출하지만 올해는 인도에 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1949년생으로 우리 나이로는 환갑인 그의 '인생 3막 성공기'는 "부딪혀라, 겁먹지 마라. 내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로 시작하고 있었다.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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