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시청률 올리기는 '막장'이 없다

저녁시간까지 '막장 드라마'

"갈 데까지 가보자."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막장 드라마'의 내용을 보면 딱 이 수준이다. 아침드라마의 단골 메뉴였던 불륜,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배신 등의 자극적·선정적인 내용이 저녁 시간대까지 꿰차고 있다. 가족 단위 시청자가 많은 일일드라마 시간이니 좋은 소리 듣기는 힘들다. 시청자도 비평가도 비난을 퍼붓는다. 그런데 나아질 기미가 없다. 오히려 갈수록 더 망가지고 있다. 갱도의 막장이야 끝이라도 있지만 드라마 막장은 막다른 곳이 안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 왔기에

강간, 불륜, 배신, 그리고 복수.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의 주요 코드이다. '세상에서 가장 현모양처였던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요부가 되는 이야기'. 이 드라마의 제작의도이다. 이것이 마치 무슨 면죄부라도 되는 모양이다. 이 드라마에선 겁탈당해 결혼한 주인공 은재가 친구와 바람난 남편(교빈)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 복수극을 진행한다. 이런 내용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3일 첫 방송 뒤 불과 두 달 만에 시청률 30%대를 위협하더니 지난 7일 결국 시청률 30.4%를 기록했다. 지난 9일 종영한 '너는 내 운명'(KBS1)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았다. 출생의 비밀, 겹사돈, 백혈병, 신데렐라 이야기, 부부클리닉 등 시청자들의 입방아에 오른 내용도 많았다.

두 드라마는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디시인사이드가 6일부터 13일까지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 '막장'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은?"이라는 주제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각각 1위(너는 내 운명)와 3위(아내의 유혹)에 올랐다.

2위에 오른 '꽃보다 남자'(KBS2)는 자극적인 설정, 극단적인 캐릭터, 부의 가중치 등 가치관 문제가 제기됐다. 특히 매회 노출되는 선정성, 폭력성, 자극성은 더욱 화를 불렀다. 이 밖에도 극단적 고부갈등이 등장하는 '유리의 성'(SBS), 이혼·파혼 등 파탄 난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내 인생의 황금기'(MBC), 출생의 비밀이 중심인 '에덴의 동쪽'(MBC)도 막장드라마 대열에 들었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조강지처클럽'(SBS)이나 '엄마가 뿔났다'(KBS2)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드라마 전문가들은 이런 막장 드라마의 등장을 일일드라마의 '황제'로 불리는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서 찾는다. MBC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 '온달왕자들' '인어 아가씨' '왕꽃 선녀님' '아현동 마님' '하늘이시여' 등의 '히트상품'이 그렇다. 모두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40% 안팎을 기록했다.

◆욕하는 입 vs 즐기는 눈

이런 막장 설정·내용에 대해 시청자들은 '아침드라마를 능가하는 선정성과 폭력을 거침없이 보여준다'는 평가를 한다. '너는 내 운명'의 한 시청자는 "한국 드라마의 막장 요소를 몽땅 모아놓은데다 저질 연기력까지 추가된 환상적인 드라마"라며 악평했다. '너는 내 운명' 홈페이지에는 '새벽 친모(미옥) 골수는 누가 줄까? 99% 이상이 호세'라는 조롱 섞인 글까지 올라왔다. 아울러 드라마 비평가 조민준씨는 한 칼럼에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지닌 막장스러움은 가히 전대미문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며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렇게 되니 웬만큼 드라마를 보지 않고서는 극의 흐름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인물 간 관계가 너무 꼬인데다 항상 새로운 변수가 나타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는 힘들다. 막장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도 마찬가지이다. '너는 내 운명'에서 독한 시어머니 역을 맡은 연기자 양금석(48)씨도 지난 5일 한 일간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이) 굳이 말하자면 만화적 캐릭터"라며 캐릭터 몰입이 힘들다는 점을 털어놨다. 그리고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쪽대본' 나오는 드라마를 하는 한 (억지 설정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보았다. "가족 없는 가족 드라마가 양산되면서 가족드라마의 이미지 자체도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 채널은 막장 드라마에 고정되고 있다. 실제로 AGB닐슨 미디어리서치가 집계한 '너는 내 운명' 최종회(9일) 전국 평균 가구시청률은 무려 43.6%. TNS 미디어코리아 집계에서도 40.6%나 돼 '대박'으로 끝을 맺었다. 시청자들은 이를 빗대어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명을 붙여 줬다. 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도저히 안 볼 수 없는 선정적·자극적 내용의 통속성을 든다. ▷어려운 경제현실에서 현실적 도피처 필요 ▷드라마 주요 소비자인 주부들의 대리만족 등의 사회학적 역할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내가 만들어도 저것보단 낫겠다'는 일종의 우월감도 하나의 이유로 꼽힌다.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일일드라마의 막장 경쟁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다양한 시청자층을 끌어당기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한국 드라마의 막장 경쟁은 결국 시청률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한 칼럼에서 다른 드라마가 '에덴의 동쪽'의 인기를 못 넘는 것을 거론하며 '그 괴력의 근원이 아주머니들을 몰입시키는 통속적 전개에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아줌마들의 '리모컨 신공'으로 드라마 왕국 한국은 통속극 천하가 되었다"고 했다. 좋은 내용을 챙기는 드라마 수요층이 있어야 채널 고정 현상이 바뀔 수 있다는 방증이다.

저녁 종합뉴스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삐끼' 상품이라는 일일드라마의 성격을 깨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의 작품성을 보여주기 위해 '평일 30분'이라는 편성의 틀도 깨야 한다. '가족' 이외에도 신선한 소재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결국, 시청률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단기적으로 일부 시청층만 노리는 제작 관행이 개선돼야 가능한 이야기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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