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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수다]대구의 '아시아 거리'…북부시외버스터미널 외국인 상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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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크어·베트남어·중국어 간판들로 즐비… 해외여행 온 기분

대구 북부정류장 상가 안에 자리한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대구 북부정류장 상가 안에 자리한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올튼 워디' 앞에서 고려인 3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 부부와 딸 김세바라(37,오른쪽) 씨가 나란히 웃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손이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차린 식당이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인 이들 가족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시외버스터미널(2만9천736㎡·이하 북부정류장) 앞에 들어서면 이국적인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글 간판보다 중국어·우즈베크어·베트남어 간판이 먼저 눈에 띈다. 베트남 쌀국수집 옆에 인도 레스토랑과 카자흐스탄 식료품점이 붙어 있고, 그 사이로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흘러나온다. 시민들이 '대구의 아시아'라고 부르는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다.

고려인 4세 김세바라(37, 왼쪽) 씨가 운영 중인 북부정류장 내 우즈베키스탄 마트에서 부모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인 그는
고려인 4세 김세바라(37, 왼쪽) 씨가 운영 중인 북부정류장 내 우즈베키스탄 마트에서 부모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인 그는 "코로나 이후 장사가 많이 어렵다"며 상권 활성화를 위한 지역 기관의 관심을 촉구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염색공단 '외국인 근로자 동네'에서 '아시아 거리'로

북부정류장 주변이 다문화 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인근 서대구산업단지와 비산염색산단, 칠곡·구미 지역 공장을 오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면서 상권이 형성됐다.

비산동은 원래 섬유·봉제 공장이 밀집한 산업 지역이었다. 1990~2000년대 공장 인력난이 심화되자 외국인 노동자 유입이 크게 늘었다. 값싼 월세, 공장 접근성, 시외버스 정류장이 맞닿은 지리적 조건이 이주민에게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지금 이 거리에는 케밥과 타코, 인도 커리 등 세계 각국 음식점과 수입 식료품점, 외국인 전용 휴대폰 가게 등 50여 곳의 상점이 들어서 있다. 한국인 사장이 외국인 직원을 통역으로 두는 가게가 흔하고, 외국인이 직접 사장인 곳도 적지 않다. 한국 속 작은 외국이다.

파키스탄 출신 굴나딤(50) 씨가 북부정류장 인근 알라딘 모바일 가게에서 중고 휴대폰을 살피고 있다. 대구에 온 지 20년째인 그는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상인 중 한 명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파키스탄 출신 굴나딤(50) 씨가 북부정류장 인근 알라딘 모바일 가게에서 중고 휴대폰을 살피고 있다. 대구에 온 지 20년째인 그는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인 상인 중 한 명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비산동에서 20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예전엔 거의 모두가 섬유 공장 내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 지금은 손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라며 "언제부턴가 이 골목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우즈베키스탄 청년 라힘(28) 씨는 "일 끝나고 친구들과 여기 오면 고향 냄새가 나서 좋다"며 "대구는 서울보다 조용하고 방값도 싸서 살기 편하다"고 말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만평역이 바로 붙어 있고, 시외 이동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북부정류장은 사실상 고향으로 가는 관문이다. 정류장 주변 20만~30만 원대 원룸은 단기 거주자로 늘 채워져 있다.

파키스탄 출신 칸 나임(34) 씨가 북부정류장 상가 내 아시아푸드&폰 마트에서 식료품을 정리하고 있다. 아버지 칸 이스마일(53)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 지 12년째다. 강황가루 베이스의 카레 재료가 가장 잘 팔린다.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에는 이처럼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상점이 적지 않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파키스탄 출신 칸 나임(34) 씨가 북부정류장 상가 내 아시아푸드&폰 마트에서 식료품을 정리하고 있다. 아버지 칸 이스마일(53) 씨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 지 12년째다. 강황가루 베이스의 카레 재료가 가장 잘 팔린다.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에는 이처럼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상점이 적지 않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북부정류장 앞, 국적이 50여 개 넘는 상점들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게 중 하나가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올튼 워디(oltin vodiy)'다. '황금계곡'이라는 뜻이다. 고려인 3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 부부가 운영한다. 일제강점기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손이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차린 식당이다. 샤실릭(양꼬치)·라그만(우즈베키스탄식 우동)·플로브(소고기 볶음밥)가 대표 메뉴다. 한 입 베어 물면 해외여행 온 기분이 든다.

고려인 4세인 딸 김세바라(37) 씨는 바로 옆에서 우즈베키스탄 마트를 운영한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다. 그는 "코로나 이후 장사가 많이 어렵다"며 "지역 기관에서 축제 같은 행사를 열어 사람들이 북부정류장으로 다시 모여들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청년 라힘(28, 가운데) 씨가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 골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청년 라힘(28, 가운데) 씨가 북부정류장 다문화 거리 골목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일 끝나고 친구들과 여기 오면 고향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이 거리는 시외 이동이 잦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고향으로 가는 관문이자 쉼터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파키스탄 출신 칸 나임(34) 씨는 아버지 칸 이스마일(53) 씨와 함께 아시아푸드&폰 마트를 운영한 지 12년째다. 강황가루 베이스의 카레 재료가 가장 잘 팔린다. 역시 파키스탄 출신인 굴나딤(50) 씨는 알라딘 모바일 가게에서 중고폰을 판다. 대구에 온 지 20년이 됐지만 그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는 "3공단 안경 공장들이 대부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외국인 노동자 수가 확 줄었어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고 한숨을 쉬었다. 자가용 보급과 KTX 확대로 북부정류장을 찾는 발길 자체가 줄어든 것도 상권 침체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정류장 앞 골목. 한글 간판 대신 우즈베크어·베트남어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시민들이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정류장 앞 골목. 한글 간판 대신 우즈베크어·베트남어 간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시민들이 '대구의 아시아'라고 부르는 이 거리에는 50여 곳의 다국적 상점이 한국 속 작은 외국을 이루고 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 "테마거리로 되살려야"…전문가·상인·행정 한목소리

인구 감소가 가파른 대구에서 비산7동 상권이 버티고 있는 것은 외국인 유입 덕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인이 없었다면 진즉에 공동화됐을 거리라는 얘기다.

김진엽 계명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북부정류장 아시아 거리는 공공의 계획이 아니라 외국인 주민과 지역 상인의 상호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적 다문화 공간"이라며 "인구 감소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도시 활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거점이자, 도시구조 변화와 사회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정책적·학문적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정류장 일대 외국인 상대 상점 위치도. 서대구로를 따라 만평네거리와 평리네거리 사이에 위치한 북부정류장 주변으로 외국인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만평역과 맞닿아 있어 교통 접근성이 높다. 달서천을 끼고 서부소방서 인근까지 이어지는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구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대구 서구 비산7동 북부정류장 일대 외국인 상대 상점 위치도. 서대구로를 따라 만평네거리와 평리네거리 사이에 위치한 북부정류장 주변으로 외국인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만평역과 맞닿아 있어 교통 접근성이 높다. 달서천을 끼고 서부소방서 인근까지 이어지는 이 일대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구의 대표적인 다문화 거리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박정구(80) 북부정류장 상가번영회장은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간판은 제각각"이라며 "사람이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축제와 문화가 있는 테마거리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근 염색업체 관계자도 "출퇴근도 편하고 북부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곳인데, 기반시설이 너무 노후화됐다"고 지적했다.

서구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서구청 관계자는"지난해 상가번영회를 골목상권 공동체로 지정하는 데 협조했으며, 앞으로도 공모사업 지원과 유관부서 협업을 통해 공공 공간 정비와 주민 참여형 문화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 북부정류장 상가 안에 자리한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대구 북부정류장 상가 안에 자리한 우즈베키스탄 레스토랑 '올튼 워디' 앞에서 고려인 3세 이보둘라(65)·이마르타(65) 씨 부부와 딸 김세바라(37,왼쪽) 씨가 손하트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러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후손이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와 차린 식당이다. 대구에 온 지 15년째인 이들 가족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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