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월식」/ 고진하

뭉쳐진 진흙덩어리, 오늘 네가

물방울 맺힌 욕실 거울 속에서 본 것이다

십수 년 전의 환한 달덩이 같은 얼굴이 아니다

푸석푸석 부서져 내리는

진흙 假面.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퍽 대견스럽다.

하지만, 여름 나무가 푸른 잎사귀에 둘러싸여 있듯

그걸 미리 벗어버릴 수 없는 것은

너의 한계,

너의 슬픔.

오래 전, 너의 출생과 함께 시작된

개기월식은 지금도 진행 중.

고진하의 「월식」은 우울한 얼굴에 대한 기록이다. 물론 그 얼굴은 처음에는 '환한 달덩이 같'이 시작했다. 그 '달덩이'에서 낯설고 생경한 '뭉쳐진 진흙덩어리'의 이 행이 얼굴에서 벌어지는 월식 현상이다. '환한 달덩이'의 빛을 가로막는 진흙투성이 애옥살이 탓에 나는 가면을 쓰고 있다. 이 가면은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 언제나 벗어버릴 수 있는 삶의 외피 즉 죽음이다. 하지만 그토록 쉽게 떨쳐버릴 수 있다는 현실의 애옥살이란 더욱 더 벗어나기 힘든 진흙 속 이전투구이다. 시인은 교묘하게 두 개의 삶을 보여준다. 진흙의 삶과 달빛의 삶! 혹은 진흙/죽음에 가까이가는 달빛의 얼굴과 그 월식현상을 기억하는 눈! 그 둘은 샴쌍둥이처럼 분리가 쉽지 않다. 월식은 '출생과 함께 시작'된다. 죽음 없이 생도 없다는 그 힘든 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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