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유지돼 온 고교평준화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계 안팎에선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업성취도평가 결과 공개와 자율형사립고 선정, 대입자율화 추진 등 일련의 정책들은 평준화가 본격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교육정책 결정권자들이 잇따라 고교평준화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어 고교 평준화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지각변동 일으킨 고교 다양화정책
최근 교육 현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이 정책은 2012년까지 자율형 사립고 100개교, 기숙형 공립고 150개교, 마이스터고 50개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각 학교마다 특색을 살려 자율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되면 우리나라 전체 고교(2천여개)의 15% 정도가 기존 고교와 차별화된 학교로 변신하게 된다. 이는 고교 평준화 폐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맞먹는 큰 변혁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경북 고교 중 이 프로젝트에 포함됐거나 포함될 예정인 학교들은 기대감이 높다. 자율형 사립고 전환 예정인 계성고 김재현 교감은 "성적이 상위 5% 안에 드는 대구 학생을 1천명 정도라고 봤을 때 자율형 사립고가 되면 300명 정도는 유치할 수 있어 과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된 포산고 윤대영 교사도 "지난해엔 신입생 선발에서 약간 미달됐지만 올해는 경쟁률이 4대 1에 가까웠고 커트라인도 20% 정도 높아졌다"며 "달성군의 명문고로 발돋움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 등록금이 일반 고교의 3배나 된다. 한 학생이 한 해 내야 할 등록금만 500만원 안팎에 이르러 '귀족학교'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기숙형 공립고도 기존 농·산·어촌의 우수 고교가 선정돼 이미 '명문고'로 자리 잡고 있는 학교에 다시 지원하는 '이중 혜택'이란 지적도 적잖다. 경북의 A고 교장은 "이미 각종 지원을 받던 학교들이 기숙형 공립고에 지정되면서 지역내 교육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자율화도 가세
정부의 또 다른 교육 정책은 '대입자율화'다. 학생 선발을 대학 자율에 맡겨 성적 위주의 선발보다는 재능을 가진 다양한 학생들을 뽑아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이럴 경우 '3불 정책'(고교등급제 금지·본고사 금지·기여입학제 금지)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수성구 한 학원장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이제 대학도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며 "대학들이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고교등급제와 대학별 고사 등이 정착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고려대가 2009학년도 수시2학기 모집 전형에서 특목고 출신을 우대했다는 논란이나 연세대가 2012학년도 본고사형 대학별고사 도입 방침을 내놓은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더욱이 서울시교육청은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 가고 싶은 고교를 스스로 택하는 '고교선택제'를 적용한다고 밝혀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경북도교육청 관계자는 "고교선택제나 대입자율화 등은 성적이 우수한 고교와 그렇지 않은 고교를 차별화해 결국 고교등급제로 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평준화 존폐 논란
정부 정책은 고교평준화 폐지 쪽으로 가고 있는 추세다. 최근 한승수 국무총리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국회에서 고교평준화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흐름으로 풀이된다.
고교평준화 폐지를 찬성하는 쪽은 수십년간 학교 간 경쟁이 없어 학력이 하향평준화됐다고 주장한다. 오랜 평준화로 인해 수월성 교육이 큰 타격을 받았는데 지금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우수 인재를 특별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경북대 교육학과 신상명 교수는 "고교 평준화는 고교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수준 차이를 없는 것처럼 왜곡하는 시스템"이라며 "완전 폐지는 어렵더라도 상당 부분 개선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전교조 대구지부 김병하 사무처장은 "평준화가 폐지되면 고교 입시가 다시 부활하게 되고 교육을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는 사교육과 부모의 능력으로 학력이 결정되는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