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이트데이도 남성들 지갑 '꽁꽁'

직장인 김모(27·중구 대봉동)씨는 요즘 연일 토끼 눈이다. 사탕 제조법을 소개하는 인터넷 블로그, UCC 등을 둘러보느라 밤새 컴퓨터에 푹 빠져 있다. 김씨는 "매년 화이트데이가 되면 향수나 옷 가지를 사줬는데 최근 급여가 반토막 나면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비용을 아끼고 정성도 보여줄 겸 직접 초콜릿과 사탕 등 선물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불황이 화이트데이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비싼 선물이나 사탕 꾸러미 대신 직접 만든 사탕을 선물하는 남성들이나 업체 이벤트를 이용하려는 알뜰 연인들이 많다.

세븐일레븐은 14일 화이트데이를 맞아 2천500원짜리부터 7만원대 고가상품까지 모두 71종의 폭 넓은 가격대의 화이트데이 상품을 준비했다.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남성 고객들이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매하는 경향이 늘었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얇아진 연인들을 겨냥한 공짜 마케팅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G마켓이 최근 진행한 '화이트데이 선상 프러포즈' 이벤트에는 순식간에 2만4천여명이 응모했다. GS이숍이 1인 2매씩 주는 뮤지컬 '아이러브유' 티켓 추첨 이벤트 응모자는 1천67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무료 이벤트 응모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했다.

불황은 화이트데이를 '가족의 날'로 바꿔놓았다. 김세영(30)씨는 14일 여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다. 부모님께 인사시키고 데이트 비용도 줄이려는 의도다. 김씨는 "매년 대형 사탕 바구니에 쏟아 붓는 10여만원의 돈이 부담스러웠다"며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게 훨씬 뜻깊은 기념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현대백화점이 최근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20~30대 직원 3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는 이들(107명)이 가장 많았다.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 주는 날'이라는 공식도 파괴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 관계자는 "최근 여성의 사탕과 꽃바구니 구매 비중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며 "경기 불황에 다들 주머니가 얇아져 남자가 선물한다는 화이트데이 공식마저 모호해졌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 화이트데이란?=1958년 일본 제과회사가 밸런타인데이(2월 14일)에 덜 팔린 사탕의 재고를 없애기 위해 만든 데서 연유한 정체불명의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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