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세계적 불황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4월 2일, 런던에서 열리는 G20 금융정상회담은 이를 국제협력으로 해결해보겠다는 시도인 셈이다. 그런데 경제력 있는 20개국의 정상이 모여 국제 협력을 논의하는 회담에 하필 '금융'이란 용어가 따라 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현재의 난국이 '금융'에서 비롯되었다는 유무언의 합의가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금융'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원래, 금융이란 사회적 유휴자금을 실물경제 부문으로 중개해주는 산업이다. 이를 금융의 '실물 경제 지원'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했던 신자유주의 금융 시스템은 금융의 역할을 '실물경제 지원'에서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로 바꿨다.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엄청나게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산업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끼어 대박을 얻으려는 자금이 전 세계적으로 수백조 달러 규모나 창출되어 국경을 넘나들었다. 각국 정부는 이런 자금이 국내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규제 없는 환경'을 창출하려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의 '금융 허브' 정책이나 현재의 '금융 중심지' 정책은 모두 이를 노린 것이다. 각국 정부들은 또한 자국 내의 금융기관들이 마음껏 신용을 창출하고 위험한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제거했다. 이에 따라 2008년 현재 전 세계의 금융 자산(예금'주식'채권'파생상품) 규모는 GDP의 13배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미국 7대 대형 투자은행의 CEO들은 2004~2007년에 모두 36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았다. 심지어 국가의 구제 금융을 받은 AIG 같은 회사가 지금도 수억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임원들에게 지급할 정도니 그 도덕적 해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흥청망청하는 사이에, 신용(채권'채무 관계)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부풀릴 대로 부풀려졌다가 어느 순간 대폭발하면서 닥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G20 금융 정상회담에서는 특히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큰 폭의 개혁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해왔던 영국의 브라운 총리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대담한 개혁안들을 내놓거나 동의하고 있다.
우선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그동안 미국, 영국 등에서는 대형 투자은행(증권 관련 영업이 주업무)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방치하고 있었으며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은 아예 감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부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거나 새로 도입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번 세계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는 파생금융상품에 대해서도 감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MBS, CDO 등은 수천 개에 달하는 대출채권(은행이 소비자로부터 대출금과 이자를 상환 받을 수 있는 권리)을 담보(기초자산)로 만든, 이른바 유동화 증권이다. 심지어 이런 유동화 증권을 담보로 새로운 유동화 증권을 만들기도 한다. 이에 따라 파생금융상품은 위험성과 수익성, 심지어 최종적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파생금융상품에 대해서는, 감독이 불가능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아예 금지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그동안 영국'미국 같은 금융 중심 국가의 생존에 필요조건이었던 '국경 간 자금 이동의 자유'를 일정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영국 정부 차원에서 흘러나오고 있어 이후 세계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변화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지금 유의해야 할 점은 이 같은 논의들이 불과 2년 전만 해도 비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주장하던 '황당한 소리'였다는 점이다. '황당한 소리'가 영국'미국 최고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세상이 변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2년 전의 세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한국정부는 금융기관의 대형화, 겸업화, 그리고 탈규제를 절대적 원칙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지렛대 삼아 금융중심 국가로 나가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G20 차기 의장국인 한국의 정부가 세계와 국가를 위해 쓸데없는 이데올로기적 아집을 버리고 국제 정세를 면밀히 관찰하며 각성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종 태(금융경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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