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오늘 부산에서 태어난 허정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 빠지지 않고 헤쳐나간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다. 4'19 혁명 뒤 과도정부 내각수반의 역할을 무난히 해냈다.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의 결단을 내렸고, 단일화 후보가 패배한 뒤 정치 전면에서 물러났다.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3'1 운동에 참여했다 중국으로 망명, 임시정부 요원으로 활약했다. 1920년 임시정부와 중국 국민당의 주선으로 6개월가량 프랑스에 유학, 재불 한인거류민회장으로 교민들을 결속했다. 이후 미국 뉴욕한인유학생회장, 북미한인교민총단장,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회 등을 통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 조선어학회사건 등으로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4'19 직후 과도정부 내각수반 겸 외무부장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정치적 소용돌이를 정상화시키는데 노력했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이승만을 하와이로 망명시킨 뒤 새로 발족한 내각에 권한을 넘겨줬다. 박정희 정권이 군사쿠데타 이후 민정으로 이양하려던 시기 국민의 당을 창당해 대통령 후보가 됐으나 야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윤보선에게 양보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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