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 사랑이란 어휘엔 이미 좋은 정서들이 모두 담겨 있다. 경전(經典)의 절대가치에서부터 속인들의 로맨스까지 말이다. 여기에 '즐거움'이라는 구체성까지 더했으니 이 꽃처럼 사랑을 넉넉하게 담고 있는 꽃도 드물다. 이름도 재미있다. 아름다움에 끌린 길손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대서 '척촉'(擲燭)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수로부인에게 '헌화가'를 부르며 노인이 꺾어온 것도 철쭉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벼랑으로 올랐던 촌로(村老)의 무모한 애정 공세…. 철쭉이 사랑의 꽃임을 신라시대에 어찌 알았을꼬?
소백산은 동해안을 타고 남하하던 백두대간이 지리산 쪽으로 방향을 틀어 크게 몸을 일으킨 곳. 웅장한 산세와 사시사철 절경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중의 하나. 영주시'봉화군'단양군에 걸쳐 있으며 연면적은 320㎢에 이른다. 주봉인 비로봉(1,439m)을 중심으로 국망봉'신선봉'연화봉'형제봉 등 1,000m급 영봉들이 좌우로 포진해 있다. 웅장한 산세만큼 곳곳에 골짜기를 형성해 골마다 비경을 빚어냈다. 영주 쪽으로 죽계구곡'희방폭포가 자리를 잡았고 단양 쪽으로 뻗은 남천계곡'천동계곡은 '단양8경'의 시발점을 이루었다.
#비로봉 평원따라 철쭉'야생화 만발
소백산의 장쾌한 능선조망은 그 규모나 경관이 있어 으뜸으로 친다. 여인의 몸매처럼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대평원은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을 산으로 불러들인다. 백두대간의 힘찬 기상을 이어받은 능선이지만 날카로운 기운보다 부드럽고 평온함이 느껴지는 육산(陸山)이다. 한국의 알프스라는 별명답게 완만한 사면을 따라 펼쳐지는 설원의 조망은 겨울산행의 으뜸으로 꼽힌다. 하지만 소백의 백미는 국망봉~비로봉~연화봉으로 이어지는 철쭉의 레이스. 연화봉에서 비로봉을 잇는 10리길은 '하늘로 이르는 길' 그 자체다. 여기에 연분홍실 같은 꽃자수가 스카이라인을 따라 펼쳐질 때면 이곳이 왜 '천상화원'으로 불리는지 한눈에 알아채게 된다.
산행 들머리는 단양 어의곡으로 잡았다. 시원한 계곡이 중턱까지 이어지고 녹음이 우거져 여름산행으로 적합한 코스가 아닐까 싶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라는 말에 가볍게 따라 나섰는데 소백이 '산꾼의 가벼움'을 꾸짖는지 급경사 오르막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무렴 백두대간의 마루가 쉽게 정상을 보여 주겠는가?
#새색시 볼 같은 연분홍 꽃잎의 매력
드디어 비로봉 능선이 정오의 햇살 속에 일행을 맞는다.
비로봉에서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 건 대평원. 2, 3㎞에 이르는 대초원이 동쪽으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이 초원을 따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앞 다퉈 피었고, 군락을 이룬 철쭉들의 경염(競艶)이 한창이다. 소백산 철쭉은 제 컬러가 뚜렷하다. 우선 일림산'황매산'바래봉처럼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그쪽이 인위적 조림에 의한 대단위 군락이라면 소백산은 자연 질서를 따라 형성된 소담스런 군락이다. 색깔도 다르다. 다른 산의 철쭉은 다분히 자극적이다. 붉은색의 강한 톤은 쉴 새 없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여기 꽃들의 투명한 연분홍 컬러는 모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런 색조를 산꾼들은 '수줍은 새색시의 볼' 이라고 표현한다. 비로봉 정상에 이르면 또 하나의 진객이 산꾼들을 맞는다. 북서쪽 사면을 따라 형성된 주목 군락지. 수령 수백년의 주목 수천 그루가 사면을 따라 병정들처럼 도열해 있다.
#기품 있는 선비 풍모 같은 소백의 산세
소백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목책 산책로. 비로봉'연화봉 근처에 등산로를 따라 나무계단을 설치했다. 등산로 훼손을 줄이고 야생화, 철쭉 생태를 보호하기 위한 처방이다. 덕분에 등산로 주변의 생태는 대단히 양호하다. 사진을 핑계 삼아 몇 걸음 '탈선'을 자행했는데 발끝 촉감이 양탄자처럼 푹신했다.
철쭉의 피크지점은 연화봉~천동계곡 갈림길 근처. 비로봉 정상에서 내려온 붉은 물결이 카펫처럼 사면을 뒤덮었다. 등산객들을 위해 특별히 설치해 놓은 데크에서는 기념촬영이 한창이다. 잠시 잠깐 '꽃과의 동거'지만 꽃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웃고, 향기를 머금는다. 꽃에도 전염력이 있는 걸까. 자신의 화사한 기운을 다른 대상에게 옮겨 준다.
몸과 마음을 붉게 물들였던 철쭉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천동계곡으로 들어섰다. 다리안 관광단지까지는 20리길 가량 된다. 여름산행에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계곡의 물소리에게 다리의 피로를 풀고, 흐르는 땀은 원시림의 청량한 기운이 식혀준다.
90여분을 걸어 다리안관광지에 이른다. 이로써 총 6시간, 12㎞에 걸친 산행을 끝냈다.
산밑에서 올려다 본 소백은 무척 평화로웠고 기품 있는 선비의 풍모를 띠고 있었다.
조선시대 풍수학자 남사고(南師古)선생은 이 산을 보고는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했다고 한다. 신록의 생명, 철쭉의 화려함, 주목의 기상이 어우러진 비로봉 대평원을 걷노라면 풍수에 문외한인 일반인들도 격암의 산수평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취재 지원 : 산앙산악회 053-558-0080)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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