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3공단의 한 안경공장에 다니는 김모(45·여)씨는 시간당 4천원을 받는 최저임금노동자다. 한 달을 꼬박 일해 받는 월급은 80만원 남짓. 남편 없이 혼자 벌어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 2명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집세 30만원에 세 식구의 식비와 교통비 등 생활비를 빼면 한 달 가계부는 늘 '0원'. 김씨는 "옷 한 벌 사려면 가격표를 몇 번이나 봐야하고, 아이들 학원은 엄두도 못 낸다"며 "그나마 최저임금까지 깎겠다니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재계가 임금삭감을 요구해 노동계가 발끈하고 있다. 최저임금 근로자들은 "가뜩이나 적은 임금에 생활이 어려운데 이마저도 깎으려하는 것은 생계의 최후 방어선마저 무너뜨려 그야말로 길거리로 나앉으라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한쪽은 깎자, 한쪽은 올리자…
경영계는 최근 경영상의 어려움과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인하가 불가피하다며 올해(4천원)보다 230원 낮은 시급 3천770원(5.8% 삭감)을 제시했다. 경영계가 삭감안을 내놓은 것은 1988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경영계는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최저임금이 오르면 영세 중소기업은 문닫을 수밖에 없어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삭감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노동계는 '삭감 불가'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빈곤층 확대와 양극화 심화로 최저임금 근로자의 생계유지를 위해 오히려 인상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한국·민주노총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 등 24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지난해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정액급여 추정액(193만원)의 50% 수준에 맞춰 올해보다 29.7% 인상된 시급 5천150원을 요구했다. 양측이 제시한 액수는 무려 1천380원의 차이를 보여 임금 교섭에 난항이 예상된다.
성서공단 노동조합은 3일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지하철 2호선 성서공단역 인근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도 5일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 사무실 앞에서 최저임금인상 선포식을 열었다.
◆시급 4천원마저 깎으면?
최저임금제도는 노동자들의 절대빈곤을 막고 최소한의 생계를 법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영세기업이나 용역업체들은 최저임금제를 임금 잣대로 활용한다. 이 때문에 아파트 경비원, 주유소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영세 사업장 노동자 등 최저임금 근로자들은 경영계의 삭감요구안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년째 대구의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정모(28·여)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6시간(점심시간 제외) 일하며 한 달에 60만원을 받는다. 시간당 4천500원 정도를 받아 최저임금보다는 약간 많지만 4대보험 혜택이 없다. 정씨는 "근로계약을 한 것도 아니어서 추가근무수당을 받을 수도 없고 사장이 나가라고 하면 곧바로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서공단의 주물공장에 다니는 이모(38)씨는 회사가 어려우니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계약직으로 전환될 경우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지고 상여금도 받지 못하기 때문. 이씨는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터에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성서공단노조 김희정 사무국장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량해고로 많은 노동자들이 생활터전을 잃었는데 지역사업장 다수가 경력을 무시하고 최저임금으로 직원을 뽑고 있다"며 "실질 임금이 줄고 가스·전기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인상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최저임금 심의위원회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29일까지 의결해 노동부 장관에게 보내면 장관이 8월 5일 고시한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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