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경기를 보지도, 강속구를 씽씽 뿌리며 시원함을 안겨주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제구, 수 싸움 등 완급을 조절하는 경기 운영 능력으로 프로 무대 마운드에 섰다. 삼성 라이온즈의 명투수 성준, 전병호가 그랬고 2009년 이우선에게서 그런 가능성이 엿보인다.
성준(현 롯데 자이언츠 코치)과 전병호(현 삼성 라이온즈 코치)는 강속구 투수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성준은 14시즌 동안 97승을 올렸고 전병호는 12시즌을 뛰며 72승을 기록했다. 둘 다 전통의 강호 삼성의 당당한 선발 투수였다.
성준은 투구 사이의 시간 간격이 길기로 유명했다. 모자와 로진백을 만지고 포수의 사인을 본 뒤에도 공은 좀처럼 그의 손을 떠날 줄 몰랐다. 주자 견제까지 더하면 상대 타자는 집중력을 잃기 일쑤. 팬들도 그가 나오면 집에 일찍 돌아갈 생각을 포기해야 했다. 심리전. 그것이 성준의 무기였다.
전병호 역시 성준처럼 '느림의 미학'을 실천(?)했던 투수. 전병호의 직구는 시속 130㎞를 겨우 넘겼다. 하지만 여러 각도로 휘어 들어오는 싱커 등 변화구 사이에 이따금 섞여 날아오는 그의 직구는 강속구 못지 않게 효과적이었다. 팬들은 타자를 농락하는 그의 공에 '흑마구'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2009년 6월 삼성 라이온즈 선발 투수진에 새 얼굴이 들어왔다. 대학 졸업 후 불러주는 팀이 없어 상무에 입대했다가 신고 선수로 겨우 푸른 유니폼을 입게 된 이우선(26)이 주인공. 그는 세 차례 선발 등판에서 모두 5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으나 연타를 허용하지 않는 등 대량 실점 위기를 꾸역꾸역 넘겼다.
28일 네 번째 선발 등판인 두산 베어스전(6대2 삼성 승)에서 이우선은 5이닝 동안 안타 5개를 맞으며 2실점했지만 삼진 5개를 솎아내며 데뷔 후 첫 승을 거뒀다. 빠른 공은 이전 투구 때처럼 최고 시속 140㎞에 그쳤으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섞어가며 두산 타선을 막아냈다. 볼넷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시속 150㎞를 넘나드는 공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다. 그러나 이우선은 시속 145㎞ 이상의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아직 1군 무대 경험도 부족하다. 이우선이 프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삼성의 허삼영 전력분석원은 "공 끝이 지저분하다. 타자 앞에서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에 만만해보여도 쉽게 맞는 공은 아니다"면서 "제구력을 좀 더 다듬는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8일 두산전은 이우선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 타자 바깥쪽 공략이 대부분이던 이전과 달리 슬라이더 등이 몸쪽으로 꽂히면서 타자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스트라이크존을 보다 폭넓게 활용했다는 얘기다. 이우선은 첫 승 후 "얻어 맞는다고 공을 못 던지면 투수가 아니다. 이제부터 달라질 것이다.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자신감과 함께 제구가 날카로워져 가는 이우선이 대선배 성준, 전병호처럼 기교파 투수로 성공 시대를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체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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