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축구 기술자' 거스 히딩크 감독이 최근 한국을 다녀간 사이 공교롭게도 한국의 허정무 감독은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다녀왔다. 러시아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히딩크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진검 승부를 앞두고 옛정 어린 한국에서 봉사의 시간을 보내며 숨을 골랐다. 한국 대표팀에 이미 남아공행 티켓을 안긴 허 감독은 같은 시간에 이역만리의 예비 격전장을 살펴봤다.
성공 가도를 질주해 온 히딩크 감독이 또 하나의 전리품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는 데 비해 허 감독은 한국 축구와 그 자신의 필생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홈 그라운드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의 성과를 뒤로하고 다른 국가에서 열리는 월드컵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하는 것이 그 목표다. 또 하나 더 있다. 한국인 감독으로서 월드컵에서 성공을 이뤄내는 것, 그것이 축구인 허정무의 열망이자 축구 팬들의 희망일 것이다.
한국은 여러 분야에서 경탄을 자아내는 속도로 앞서 간 나라들을 따라잡았거나 근접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목에서 일류라고 하긴 어렵지만 야구, 골프, 양궁, 태권도 등 상당수 종목에서 세계 정상급 기량을 보이고 있다. 축구는 그렇지 못하다. 결코 세계 랭킹 10위 내에 들어보지 못했으며 세계적인 선수도 많이 배출하지 못했다. 세계 정상급 지도자를 찾아보긴 더욱 힘들다.
세계 청소년 축구 4강 신화의 박종환, 국내 K리그 우승의 김호, 차범근 등 뛰어난 지도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월드컵에서 웃었던 한국 감독은 없었다.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웃는 한국 감독이 되고 싶을 것이다.
축구 세계에서 명장이 가는 길은 히딩크가 제시했다. 선수들과 잘 소통하고 선수들끼리도 잘 소통하도록 해 그라운드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그의 선수들은 90분 내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도록 최고의 체력을 유지했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선수들을 야수처럼 돌진하게 변모시키는 것도 히딩크의 '기술'이다. 축구협회 등으로부터 최대한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군수 조달 능력도 뛰어나다.
히딩크는 세련되지 못했지만 열의에 가득 찬 한국 선수들을 한 번도 다가서지 못했던 세계 정상권으로 밀어올렸고 좋은 하드웨어를 갖추고도 낡은 소프트웨어로 고생하던 러시아 축구를 탈바꿈시켰다. 첼시 구단의 일류 선수들이 경기가 풀리지 않아 짜증스러워할 때 그들의 정신을 가다듬게 해 명성에 맞는 성적을 거두도록 했다.
히딩크뿐만이 아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개성 강한 최고의 선수들을 뛰어나게 조직화하는 데 탁월하다. 자존심 강하고 거친 선수들을 때로는 어르고 때로는 달래는가 하면 냉혹하게 내치기도 한다. 선수들의 불만을 못 들은 척 넘기기도 하며 출전 시간 배분에 남모를 고민을 하면서 선수들을 납득시키려 애쓴다. 그렇게 신경을 써도 2007-2008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박지성을 출전시키지 않아 논란을 빚거나 올 시즌에 카를로스 테베즈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해 그를 떠나보냈지만 퍼거슨의 용병술은 흔들림이 없다.
다른 명장들도 많다. 상대를 치밀하게 분석, 상대방의 움직임을 손바닥 보듯 해 선수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조제 무리뉴 인테르 밀란 감독, 만년 중하위권이던 비야 레알을 선두권의 팀으로 발전시켜 명문 레알 마드리드로 영입된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 등이 그들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조별 리그를 아쉽게 넘어서지 못했던 허정무 감독은 9년 만에 더 성숙하고 신뢰감 있는 지도자로 다가왔다. 좋은 선수들을 발굴,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불어넣었고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한 발 물러서 지켜보며 부드럽고 활기 찬 화합의 기운을 조성했다. 아직 그에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축구 팬들도 있지만 그는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1년 후 허 감독이 성공해 세계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 한국 축구는 그때부터 새롭고도 진정한 전진의 발걸음을 뗄 것이다.
김지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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