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詩가 흐르는 낙동강변 도남서원·경천대

상주의 선비들은 낙동강에서 배와 달을 벗삼아 시를 읊었고, 낙강시첩이라는 시집을 만들어 후세에 널리 알리고 있다.
상주의 선비들은 낙동강에서 배와 달을 벗삼아 시를 읊었고, 낙강시첩이라는 시집을 만들어 후세에 널리 알리고 있다.

상주의 낙동강에는 시가 흘러넘쳤다. 바로 그 주인공은 낙동강 변의 도남서원과 경천대다. 옛날 도남서원과 경천대를 중심으로 한 상주 낙동강은 전국 선비들의 시회(詩會)의 공간이었다.

오랜 세월 선비들은 낙강에 배를 띄우고(범주·泛舟), 낙강에 달을 띄우면서(범월·泛月) 시를 읊었다. 12세기 동국이상국집을 지은 백운 이규보를 시작으로 19세기 상주의 큰 선비인 계당 류주목의 낙강시회까지 660여년간 총 51회의 시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규보는 상주를 방문해 낙동강을 주제로 최초의 시를 지었다. 이규보가 상주는 물론 예천의 삼강까지 오르내리며 낙동강을 노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고려의 관료나 학자들이 낙동강을 쉼 없이 찾았음을 엿볼 수 있다.

이규보의 시 '행과낙동강'에서는 낙동강은 상락의 동쪽을 지나며 그 이름을 얻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기록도 있다.

조선으로 넘어와 조선 성종 때인 15세기에 기록상 낙동강 최초의 시회가 열렸고, 선조, 광해군, 효종, 숙종, 경종, 영조, 순조, 철종 때에 이르기까지 상주의 낙동강에는 크고 작은 시회가 대대로 열려 수많은 시를 후세에 남겼다.

상주의 낙강시회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시회가 열린 횟수에 못지 않게 1607년부터 1778년까지 171년 동안 8회의 시회 작품을 대를 이어가며 모아 놓은 시집(낙강시첩·임술범원록 또는 낙강범월시라고도 한다)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강상(江上)문학의 백미로 한국문학사에 중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곽희상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하나의 강에서 200여년 동안 대를 이어 한 고을의 선비들이 공동 시집을 제작한 경우는 한국문학사의 초유의 일"이라며 "상주가 낙동강의 중심이자 그 태생지였기에 그 옛날부터 상주는 물론 전국의 선비들이 상주의 낙동강을 찾아 이를 노래하고 후대에 남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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