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는 3대째 헤로인 중독자다. 여덟 살 난 이 흑인 소년의 가냘픈 팔에는 수많은 바늘 자국이 반점처럼 남아있다." 사상 최악의 조작 보도로 꼽히는 '지미의 세계'(Jimmy's World)의 한 대목이다. 1980년 9월 워싱턴포스트는 한 흑인 빈민 가정의 마약 중독 실상을 담은 이 보도로 미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이 기사는 있지도 않은 허구의 스토리였다. 날조 기사를 쓴 자넷 쿡 기자는 결국 해고됐고 퓰리처상도 반납해야 했다. 쿡 기자는 2년 후 한 토크쇼에 출연해 "기사 압박 때문에 가공의 스토리를 쓰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2007년 1월 일본 간사이TV는 '낫토'(일본 발효 콩 식품)에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특집물을 방송하면서 실험 데이터와 전문가 인터뷰를 자의적으로 조작한 것이 드러나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이 조작 방송으로 방송사가 일본 민간방송협회에서 제명당하는가 하면 일본 정부는 날조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한 방송국에 '재발 방지 계획 제출' 등 행정 처분을 내리도록 방송법까지 개정했다.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온 KBS 1TV '환경 스페셜'이 조작한 화면을 방송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3월 방영된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와 '수리부엉이 3년간의 기록'은 교양물로는 흔치 않게 13.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전문가가 당시 촬영 테이프를 분석한 결과 일부 사냥 장면이 자연 상태에서 촬영된 것이 아니라 토끼'쥐 등을 묶어놓고 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문이 일자 제작진은 일부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조작이 아니라 관행이자 불문율이므로 문제없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자연 다큐 전문가들은 '연출의 선을 넘어선 조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시청자들이 '어떻게 저런 장면을 포착했을까' 의문을 가질 법도 했지만 3년의 제작기간 등을 감안해 그냥 수긍하고 넘어갔다가 결국 눈속임을 당한 것이다. 만약 흥미와 박진감 때문에 연출과 조작을 일삼는다면 과연 자연 다큐멘터리일까.
어제 한 일간지가 주말 특집기사에서 '촬영을 위해 연출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르다'라는 사진설명을 달았다. 만약 KBS 제작진도 '연출된 화면'이라는 자막이라도 붙였다면 보는 재미는 반감했을지 모르나 시청자의 신뢰는 더욱 얻었을 것이다. 더 이상 눈속임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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