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녹색지대 사람들]화가 김일환씨

자연으로 들어온 뒤 자유롭고 경쾌해졌죠

그곳은 휴대전화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오지이다. 도로는 포장됐지만 아직 상수도는 들어오지 않는다. 운 좋으면 물까마귀, 원앙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곳, 대구 달성 가창면 상원리에 화가 김일환(59)씨 부부가 산다.

가창에서도 산길을 한참 달려 도착한 상원리에는 5가구가 살고 있다. 여기에 와본 사람들이 '대구의 강원도'란 별칭을 붙였다. 산세가 깊어서이기도 하고 그만큼 오지이기 때문이다. 우체부 아저씨와 택배 기사들이 지극히 꺼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가 '대구의 강원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번 산에 들어가면 끝까지 위로 올라가보는 성격이에요. 그때도 아래 동네에 놀러왔다가 길이 나 있기에 비포장도로 끝까지 올라왔더니 이 마을이 있지 않겠어요? 늦봄이라 꽃이 만개해 '이곳이 무릉도원이다!' 싶었어요."

그길로 보따리를 싸서 이 집을 지었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어 작업실 중심으로 집을 지었다. '작가는 생활공간이 예술적 공간이 돼야 한다'는 평소 그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1층엔 소박한 생활공간과 작은 작업실이 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40여평의 2층 작업실. 반듯한 직사각형의 작업실에는 오직 작품과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풍경밖에 없다.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그의 작업이 한결 자유롭다.

대구미술협회 회장 2년, 대구예총 부회장 4년. 화가로서 외도 기간도 올해로 끝이다. 야외에 도자기'조각 등을 할 수 있는 보조 작업장도 만들어놨으니,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할 생각이다. "자연 속에 들어온 뒤로는 의식이 자유롭고 경쾌해졌어요. 작품에도 그것이 반영됐죠."

그를 찾아간 날, 대구 시내는 30℃를 웃도는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그의 집 평상에 앉아 있으니 차갑고 상쾌한 바람에 소름이 돋을 정도. 층층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의외로 깊었다.

예술가에겐 최상의 작업공간이지만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안주인의 입장에선 그리 반갑지 만은 않을 것 같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젠 시내에선 오래 못 있어요. 외출을 해도 공기가 좋지 않고 답답해서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 정도죠."

아내 김금순(53)씨의 내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김씨가 시내에서 술을 마실 때면 아내 김씨는 공짜 대리운전 기사가 된다. "남편 전화가 오면 새벽 1시든, 2시든 차를 갖고 시내로 나갑니다. 술집 밖에서 술자리가 끝나기를 한두 시간 기다리는 일도 이제 이골이 났어요." 예술가들의 삶을 이해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상원리의 봄과 여름, 가을은 참 좋지만 겨울이 되면 풍경은 사뭇 살벌하다. 산 중이라 눈이 자주 오는데, 눈만 오면 마을로 들어오는 고갯길을 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늦봄 눈이 녹을 때까지 차가 다니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의 텃밭에는 고추'가지'오이'상추'쑥갓 등이 자라고 있다. 손님들이 올 때마다 한보따리씩 싸주지만 그래도 넘쳐난다. 자연이 그들에게 주는 선물은 이처럼 넘치도록 푸짐하다.

복수초'노루귀 등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고 약나무'약초도 많다. 여느 국립공원 못지 않게 생태적으로 귀한 곳인데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안타깝다. 요즘 상원리 계곡이 물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심지어 계곡에서 짐승을 잡아 요리해 먹는 사람들도 있다. 쓰레기를 방치해두어 길거리에 쓰레기 천지다. 여름은 상원리를 사랑하는 주민으로서 참 힘든 계절이다.

"전 귀신영화는 안 봐요. 깊은 산속에서 귀신영화 한 장면이라도 떠오르면 어떡해요."

산신령 같은 김씨의 의외의 발언이다. 유쾌한 반전이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화가 김일환=1974년부터 1998년까지 미술교사로서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83년부터 대구, 서울, 도쿄 등지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화가로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왔다. 2002년부터 대구미협 회장을 역임했으며 2006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예총 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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