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성장호르몬 장애 손자 돌보는 손금임씨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열한살인데도 아직 대여섯살 체구인 강연이는 여러 가지 장애를 안고 있다. 할머니는 수술과 치료가 시급한 강연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대책을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열한살인데도 아직 대여섯살 체구인 강연이는 여러 가지 장애를 안고 있다. 할머니는 수술과 치료가 시급한 강연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대책을 찾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김강연(11·대구 동구 불로동)군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 나이지만 체구는 아직 대여섯 살 만하다.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다. 어릴 때부터 생긴 갖가지 장애로 늘 집에만 갇혀 사는 처지다. 엄마는 이혼 후 집을 떠났고, 신용불량자인 아빠는 강연이가 네 살이 될 무렵 할머니에게 강연이를 맡긴 채 종적을 감췄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 강연이는 보이질 않았다. 할머니는 베란다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강연이가 옷을 홀딱 벗은 채 베란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밥그릇 뚜껑을 굴려가며 놀고 있었다. 할머니 손금임(74)씨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베란다 타일에 뚜껑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면서 노는 것"이라며 "옷을 입히면 갑갑한지 벗어던지기 일쑤여서 아예 벗겨놓고 산다"고 했다.

손님이 온 소리에 잠시 방으로 나온 강연이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비정상적이었다. 팔다리는 체구에 비해 앙상하게 말랐고, 몸통은 비대하게 부어오른데다 등모양마저 꼽추처럼 굽어있었다. 오른쪽 눈은 아예 변형돼 불쑥 솟아 있었고, 왼쪽 눈도 뭔가가 허옇게 덮고 있었다. 말은 전혀 할 줄 몰랐다. "아, 아!"라고 외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할머니는 용케도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아~"라고 조금 길게 소리를 내면 물을 달라는 것이고, 아랫도리를 붙잡고 짧게 소리를 내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이란다.

강연이는 태어난 지 백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2차례 눈 수술을 받았지만 오른쪽 눈은 실명하고 말았다. 지금은 남은 왼쪽 눈마저 실명 위기에 처해 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는 백내장이라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미루기만 하고 있다"며 "아직은 희미하게 뭐가 보이는 것 같지만 조만간 완전히 눈이 멀어버려 수술조차 어려울까 걱정"이라고 했다. 또 강연이는 성장호르몬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는 이상한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자라면서 어느 순간 또래 아이들보다 확연히 체구가 작았고, 말도 할 줄 몰라 결국 지적1급 장애, 언어장애 판정을 받았다.

백내장 수술과 성장호르몬 장애에 대한 치료, 지속적인 재활치료 등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할머니는 손을 놓고 있었다. 치료는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부양해주는 자식도 없이 혼자 장애를 가진 손자를 돌보는 데 심신이 모두 지쳐버린 듯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과체중으로 무릎과 허리가 아파 거동이 쉽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15㎏에 달하는 강연이를 데리고 병원을 왕래하기도 힘들다고 했다. 더 큰 걱정은 병원비 부담. 할머니는 강연이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여서 당장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치료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할머니는 2남1녀를 뒀지만 부양 능력이 있는 사람은 딸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강연이 아빠(막내아들)와의 갈등으로 왕래를 끊은 지 한참 됐다고 했다.

이런 강연이의 상황을 알고 도움을 청해온 곳은 동구 드림스타트 사업팀이었다. 석 달 전부터 2주에 한 번씩 기저귀 공급 등을 맡아오면서 강연이의 막막한 사정을 알게 된 것. 이곡지 간호사는 "계속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강연이는 시기를 놓쳐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드림스타트 사업팀에서는 금전적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담당 간호사와 차량 자원봉사자를 배정해 강연이가 어려움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 간호사는 "할머니께만 강연이 문제를 맡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할머니가 여력이 안 된다면 사회가 함께 나서 강연이를 새롭게 일어서게 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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