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왕따 극복기

초등학교 시절, 나는 가난한 동네의 약국집 아들이었다. 덩치 큰 연탄집 아들은 나를 무던히도 미워했다. 그 녀석은 내가 부잣집 아들이라고 심술을 많이 부렸다. 친해지려고 잘해줘도 빈정거리면서 몸을 밀치고,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다른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왜 나를 미워할까.

하루는 사소한 시비 끝에 싸움이 일어났고, 연탄집 아들에게 실컷 맞았다. 말리는 녀석은 없었다. 방에 처박혀 끓어오르는 분노로 소리 없이 울었다. 며칠을 고민 끝에 동네의 해결사인 오락실 형님을 찾아갔다.

'싸움 잘하는 법 가르쳐 줘요.' 형님은 심심하던 차에 재미난 일 하나 터졌다는 듯이 진지하게 듣고는 고민하는 척했다. 주머니에서 박카스를 꺼내 따서 드렸다. 박카스 맛을 음미하면서 허공을 바라보며 하는 말. "키 작고, 팔 짧고, 다리도 짧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시선을 텔레비전으로 돌리다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무릎을 탁 치며 하는 말.

"헷띵! 박치기!"

마침 텔레비전에는 '김일' 레슬링 시합 광고가 나왔다. 형님은 나처럼 사지가 짧아 싸움하기에 불리한 사람은 박치기를 연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싸움이 벌어지면 왼손은 멱살을 잡고 오른손 주먹은 머리 뒤에 있다. 긴장이 흐르는 싸움 직전 상황에서 오른손 주먹보다 빠른 것은 이마라는 비방! 그럴듯한 이야기다. "그러면 형님, 어떻게 수련하면 됩니까?" 형님의 가르침은 간단했다. 집에 가서 벽에다 왼쪽 이마를 박으란다. 하루에 100번씩. 매주 토요일마다 수련을 잘하고 있는지 검사를 받으러 갔다. 검사란 이마를 쓱 한 번 쓰다듬는 게 전부다. 어느덧 두달이 흘렀고 왼쪽 이마가 불룩해 마치 기형아처럼 보였다. 오락실 형님은 내 이마를 만져보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했다.

결전의 날! 복수 심야! 오락실 형님은 뒷동산에 새끼줄 권투링을 설치하고 동네 아이들을 모두 모았다. 권투 글러브를 끼고 앞서 몇 명이 싸웠다. 심판은 오락실 형님이 본다. 드디어 나와 연탄집 아들과의 한 판이다. 의기양양한 녀석의 얼굴. 환호하는 동네 아이들. 나는 두렵지 않았다. 심판 형님은 양측 선수의 글러브를 잡아서 갖다 붙였다. "준비! 시작!" 말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나의 왼쪽 이마는 정확하게 녀석의 얼굴을 강타했고 그 녀석은 그대로 다운되었다. 오락실 형님은 바로 달려와 나의 손을 번쩍 쳐들고 "KO 승!" 했다.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그동안 숨겨 왔던 나의 필살기인 불룩한 이마를 보여줬다. 경악하는 동네 꼬마 녀석들. 울면서 소리치는 연탄집 아들. "권투한다고 글러브 끼게 하고는 헤띵하는 게 어디 있노. 엉엉엉." 그날 이후로 동네에서 나를 건드리는 놈은 없었다. 내 별명은 '김일'이었다.

요셉 성형외과 원장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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