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 이야기를 하자면 '계산 땅집'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까닭은 대구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불고기 식당의 원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크게 성공한 음식점이기도 하다. 당시 주인이었던 박복윤(84)이 대구시 중구 계산동 1가(봉래장여관 동쪽)에 가게를 연 것이 1957년이었으니, 자그마치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첫 출발은 궁색하고 초라했다. 허름한 움집에다 후미진 곳, 거기다 가게의 앉은자리마저 푹 꺼져서 장마철이면 늘 침수로 애를 먹었다. 누가 보아도 음식점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었기에 성공하리라 생각한 사람도 없었다. 처음에는 조그만 밥집으로 시작하였으나, 얼마쯤 지나 불고기집으로 바꾸었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처음에는 간판조차 없었다. 뒤에 금복주에서 홍보용으로 간판을 달아 주었고, 금복주에서도 단골 거래처로 삼아 엄청나게 많이 팔았다. 그러다가 불고기 장사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 초가를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였는데, 그 까닭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초가에는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구에는 얼큰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주류를 이루었다. 거기다 생선은 구워서 먹었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 시절이라 불고기가 먹혀들 것 같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불고기는 냉면과 궁합이 잘 맞았다. 그 시절 대구에는 냉면집이 크게 번창하고 있었다.
대동면옥, 부산 안면옥, 강산면옥, 황해집, 남포집, 사리원 같은 냉면집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 같은 냉면집은 이북에서 피란 내려온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음식 솜씨가 뛰어났을뿐더러 경상도 사람들보다 친절하고 사업 수완도 좋았다. 거기다 국밥 말고는 별로 먹을 게 없던 시절이라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런 여건에서 '계산 땅집'이 불고기로 도전했으니, 요즈음 말로 하자면 아이템이 좋았다고나 할까.
음식장사는 경기에 민감하다. 1960년대 초부터 대구에는 공장'상점'은행이 꾸준하게 늘어났고, 그와 함께 섬유 경기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 같은 특수에 힘입어 음식점 또한 호황을 누렸다. 심지어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음식점은 돈 헤아리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덩달아 '계산 땅집'도 입 소문을 타고 바람을 일으켰고, 밥 한 그릇 먹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그만 집에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말을 들어보면 실감이 난다. '잘나갈 때는 하루에 소고기 150㎏을 팔아도 계속 손님이 들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종업원들도 30명 정도로 늘어났고, 1980년대에 들어 옆에 있던 두 채의 집을 사들여 2층으로 올렸다. 돈벌이는 그야 말로 땅 집고 헤엄치기였다. 정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가 1990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장사에서 손을 놓았으며, 지금은 경산에서 여생을 즐기고 있다.
계산 땅집 불고기 맛의 비결은 좋은 고기에 있었다. 단골 식육점에서 소의 등심 부위를 가져다 썼다. 그와 함께 고기를 잴 때 양파와 배즙, 마늘과 설탕을 넣고 조미료는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간장도 마산 몽고간장에서 직접 실어온 것을 사용했다. 그리고 파는 넣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쓴맛이 나고 고기의 색깔이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요즈음 불고기 식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계란 노른자위가 들어간 소스가 인기였다. 또한 고기가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판 위에 한지를 깔고 고기를 얹었고, 밥은 찹쌀과 차좁쌀을 섞어서 지었는데 손님들은 '밥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불고기 붐이 일자 제2, 제3의 불고기집이 생겨났다. 대신동 네거리, 서문교회 부근, 만경관 부근에 불고기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계산 땅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하창수도 동인동에 제2 땅집을 냈고, 뒤이어 종로 땅집, 북성로 땅집이 문을 열었다. 참으로 대단한 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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