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얼어붙은 미술시장에 훈풍이 불어올까? 뉴욕을 비롯한 해외 화랑가와 서울 메이저 화랑들은 여전히 바람이 차다고 말하지만 곳곳에서 미술시장 회복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달 15일 서울에서 열린 서울 옥션 경매에서 낙찰률 61%, 낙찰 총액은 35억3천만원이라는 비교적 낮은 성과를 거뒀지만 10월 7일 홍콩 경매에서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다. 데미안 허스트, 제프 쿤스, 이우환 등의 작품 93점이 선보이며, 추정가액은 총 145억원. 22일 폐막한 한국국제미술제도 예년보다 크게 위축됐지만 지난해와 올 초 아트페어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시장의 완전 회복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 화랑가는 희망적 기대
4~22일 석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남춘모의 전시회는 근래에 지역 화랑가에서 보기 드문 '솔드 아웃', 즉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처음 갤러리에 내걸었던 작품 약 20개가 모두 팔려나갔고, 다시 내건 작품 10여개도 모두 주인을 찾아갔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솔드 아웃이 수차례 있었지만, 최근 지역뿐 아니라 전체 화랑가의 침체기를 감안한다면 경이적인 기록인 셈. 특히 남춘모의 작품 가격이 작은 크기에도 800만원대이며, 대작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번 매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남춘모는 "이번 전시가 끝난 뒤 서울쪽 메이저 화랑에서 전시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며 "해외(유럽) 스케줄과 겹치지 않도록 조율 중"이라고 했다.
15~22일 갤러리 제이원에서 열렸던 전재경 개인전에서도 전시작 13점 중 11점이 판매됐다. 150호와 200호짜리 대작을 제외하고는 모두 팔린 셈이다. 갤러리 제이원 정제희 관장은 "워낙 빨리 판매된 탓에 평소 작가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작품을 구매하지 못했다"며 "단골 고객들에게 다음 전시회에 구매해달라고 문자를 보낼 정도"라고 말했다. 지역 화랑가에서는 현 시점을 미술 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안정적인 시장으로 향하는 과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역 화랑 관계자는 "국내 유명 작가의 경우, 호당 가격을 기준으로 5천만원에 거래되어야 할 작품들이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8천만원~1억원에 거래됐다"며 "지금은 그런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지고 호당 가격, 즉 적정가로 거래되고 있는 만큼 실력있고 명성이 있는 작가의 작품은 다시금 거래에 활기를 띄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국제미술제는 다소 썰렁
18~22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화랑협회 주최로 한국국제미술제(Korea International Art Fair), 즉 키아프(KIAF) 2009가 열렸다. 이번에는 국내 122개 갤러리와 해외 46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지난해 해외 갤러리만 102개가 참여했지만 올해는 대거 불참했다. 경제 위기에다 지난해 홀대(?)에 대한 불만 때문. 참여 화랑들은 "일반 관객은 30~40%, 컬렉터들은 20~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8월 말에 열렸던 대만 타이페이 아트페어가 기대에 못미쳤던 탓에 이번 키아프 역시 별 소득이 없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참여 화랑들은 조금씩 다른 견해를 내놓고 있다.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는 "예년에 비해 관람객 숫자나 판매액이 크게 못미치겠지만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미술시장의 '큰 손'들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작가 및 작품에 따라 꾸준히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갤러리소헌 원창호 대표는 "아직 회복세로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실력있는 작가의 작품은 다소 떨어진 가격 선에서 거래가 원활하다"며 "국내외 미술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유럽에 앞서 아시아가 미술 시장 회복을 선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회복세를 점치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한 화랑 관계자는 "이번 키아프의 경우, 부스 비용을 포함해 화랑 한 곳당 1천만~1천20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이익을 남기는 화랑이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1억원이 넘는 고가 작품의 거래가 예년에 비해 워낙 크게 줄었기 때문에 메이저 화랑을 제외하고는 손익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미술시장 회복 조짐(?)
런던 소더비는 지난해 9월 15, 16일 이틀간 '내 머릿속에선 영원히 아름답다'(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라는 제목의 단일 작가 경매를 열었다. 15일은 미국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을 발표한 날이었다. 미국 경제의 파탄 신호에도 불구, 이틀간의 런던 경매는 1억1천150만파운드(약 2천435억 원)라는 기록적인 매출액을 달성했다. 작가는 다름 아닌 데미언 허스트(44)였다.
하지만 미술 시장의 정점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동시대 미술로 불리는 '컨템포러리 아트' 가격은 30~50%나 급감했다. 돈 많은 컬렉터들은 금융 위기 속에 미술품 구매를 주저했고, 판매자들은 경매에서 제가격을 쳐주지 않는 탓에 팔기를 꺼렸다. 런던의 미술 시장 분석기관인 아트택틱 가격지수에 따르면, 데미안 허스트의 '나비' 작품은 지난해 9월 대비 41%나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주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흥미로운 기사를 내놓았다. '데미언 허스트 작품 가격이 리만 사태 이후 1년 만에 회복됐다'는 내용. 소더비가 경매에 앞서 내놓은 추정 가격이 미술 시장의 정점과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소더비의 10월 경매에서는 허스트의 2006년 두개골 작품 '데스 쉬메스!'(Death Shmeth!)가 추정가 22만~26만파운드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9월 경매에서 이보다 2배 큰 작품의 최저 추정가는 40만파운드였다. 10월 14일 런던 월레스 컬렉션에서 공개될 예정인 허스트의 신작 25점도 전성기 가격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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