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만한 대중적 운동도 없다. 국내 마라톤 인구는 400만명, 해마다 전국에서 열리는 대회만 400개가 넘는다. 돈 들여 기술 배울 필요 없고, 장소 제한도 크게 없다. 운동화 한 켤레에 의지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마라톤에 입문한다. 하지만 마라톤만큼 섬세하고 체계적인 기술을 요하는 운동도 없다. 부상과 부작용, 만만하게 봤다가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왕초보의 풀코스 도전기
대구 달성공원관리사무소 남해수(49)씨는 하루를 달리기로 연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와 두류공원을 달린다. 이제는 뛰는 게 몸에 뱄지만 1년 전만해도 짧은 거리조차 뛰는데 숨이 차 헐떡거렸던 평범한 40대 직장인이었다. 남씨는 4월 열린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 입문 9개월 만이다. 남씨는 "질병만 없다면, 또 꾸준하게 훈련하면 누구나 '러너(runner)'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목표를 세우고, 이룰 때마다 조금씩 단계를 높였다. 입문 초기인 지난해 여름. 목표는 두류공원 한바퀴(2.8km)를 쉬지 않고 뛰는 데 뒀다. 마음만 앞서 속도조절이 안 됐다. 몸도 따라주지 않았다. 100m를 달렸는데도 숨이 찼다. 한 바퀴를 뛰는데 10번은 넘게 쉬어야했다. 조금씩 쉬는 횟수가 줄었다. 쉬지 않고 한바퀴를 도는 데는 보름이 걸렸다. 거리가 익혀지니 호흡도 조절됐다. 다음은 한 바퀴를 더 뛰기로 했다. 쉬울 줄 알았는데, 몸은 한 바퀴를 도는데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도를 늦추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2개월째 들어서는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두 바퀴를 단번에 뛸 수 있게 됐다.
신천금호강마라톤대회(지난해 10월) 10km코스에 도전장을 냈다. 늘 뛰던 곳이 아니다보니 거리감이 없었다. 당연히 속도조절도 안 됐다. 기록은 포기하고 완주에 목표를 뒀다. 대회는 그동안 훈련양과 실력을 가늠해보는 기회가 됐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거리를 조금씩 늘렸다. 하프 코스도 10번 넘게 뛰었다. 입문 9개월째. 이번엔 풀코스 도전. 처음엔 엄두가 안 났다. 꾸준한 연습량을 믿고 일단 뛰어보기로 했다. 20km까지는 순탄했다. 그러나 30km구간에 접어들자 고통이 다가왔다. 주위의 경관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머릿속에 '포기'만 떠올랐다. 38km구간. 남은 거리 4km. 거리가 측정되니 조금은 힘이 났다. 4시간31분. 기록보다는 해냈다는 완주의 기쁨이 컸다. 남씨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 단축보다는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는 데 의미를 뒀다"며 "힘들다고 멈추면 버릇이 돼 다음 고비를 넘기기 못하는 만큼 몸과 상황에 맞게 페이스를 조절해 왔다"고 했다.
◆마라톤의 매력은 '희열'
마라톤의 운동효과는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심폐지구력을 향상시켜 튼튼한 심장을 만드는 데 좋은 운동이다. 살빼기에도 좋다. 사람의 몸은 30분 이상 달리면 체내에 축적된 지방을 연소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식이요법을 통한 살빼기와는 차원이 다른 건강 감량법이다. 또 혈액순환이 잘 돼 성인병 등의 예방 효과도 있다. 체력을 길러주고, 근력과 지구력을 키워주는 데도 달리기만한 게 없다.
마니아들은 마라톤의 효과를 정신적인 면에서 찾는다. 5㎞, 10㎞, 하프, 풀코스 등 분명한 목표치를 정한 뒤 자신과 싸워 얻어내는 성취감이야말로 최고의 매력이라는 것. 마니아 중에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 너머 찾아오는 희열(러너스 하이, runner's high)에 매료된다고 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식히는 청량제가 되기도 한다. 황원영(38)씨는 "달릴 때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동료들과 함께 달리지만 고통과 희열은 나의 몫이다. 달리면서 복잡했던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꼬인 실타래도 풀린다"고 했다.
이런 매력을 맛보려면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심장과 근육을 격렬하게 사용하는 운동이어서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건강과 달리기'라는 책을 쓴 포항장성요양병원장 이원락(전 대구경북마라톤연합회장)씨는 "40대 이후에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엔 반드시 관상동맥의 이상 유무나 운동부하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몸에 맞게 조금씩 단계를 높이고, 운동 중 통증이 있을 땐 즉시 그만두고 휴식이나 전문적 진단 받아야 한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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