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동창회I … 그날 만큼은 우린 동심이었다

동창모임 카페 글 보는 재미도 \
동창모임 카페 글 보는 재미도 \'덤\' 황순란
학교 다닐 때완 달라 스스럼 없어져 손해숙
학교 다닐 때완 달라 스스럼 없어져 손해숙

♥동창모임 카페 글 보는 재미도 '덤'

1968년 사라호 태풍이 휩쓸고 간 다음 해, 대구 중앙초등학교를 15회로 졸업한 나는 지금 62세이다. 초등학교는 15년째 매월 15일 동기회를 가진다. 봄, 가을 소풍과 모임은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 되고 있다.

5년 전부터는 대구경대사대부설중학교 18회 졸업생들의 모임도 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성공한 친구들이 많다. 이젠 나이가 많아 의사, 교수 외에는 모두 퇴직해 백수 백조가 되어 있지만 모두들 모임을 위해 힘쓰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9월 19일 귀농한 동창 최준혁씨의 상주 포도밭에서 담소를 나누고 2차로 친구의 별장에서 모임을 가졌다. 중학교 때 합창부로 소질 있던 남녀 동창 둘이서 '향수'를 듀엣으로 불러 박수 갈채를 받았다.

자식들 혼사를 축하하며 모친상당할 때 위로해 주며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동창 모임의 카페에 좋은 글과 사진을 올리며 노년에 카페에서 즐기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황순란(경산시 삼풍동)

♥태백에서 가지는 동창회는 추억 여행

1970년대 광산업이 성황이던 때 우리는 아버지를 따라 태백으로 갔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전교생이 3천명이나 될 정도로 학생이 많아 교실이 부족하여 오전·오후반 수업을 했다. 몇 해 전부터 졸업 30년 만에 동창회도 가졌다. 지역별로 동창들의 모임도 활발해 태백으로 동창회를 다녀올 때면 한 차로 같이 모여서 가는 도중 봉화의 송이버섯 특판점에 들르고 약수도 마시며 예전에는 가보고 싶어도 못 가본 곳들을 가 본다.

해마다 태백에서 새벽 시간에는 함백산 드라이브 길에 오른다. 태백만이 느낄 수 있는 기온차로 함백산 일출을 보러가는 길은 가슴 설렌다. 새벽 안개 속에서 야생화 일출의 장관을 보고 내려오며 들르는 정암사. 늦가을 어느 날 정암사 개울에 내린 눈과 개울물이 그리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동창회 날, 학교 마당에는 기수별 깃발이 나부끼고 기수별로 앉는다. 동창회 추억 여행은 내 삶의 활력소다. 그리도 넓어보였던 운동장엔 졸업생들로 가득하고 축하 불꽃놀이도 벌어지며 우리들은 밤새 지나온 추억 속에 이야기를 나눈다.

까만 모습에 까만 눈이 반짝이는 아버지를 둔 우리, 노란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 심부름을 다녔던 우리, 겨울이면 지붕 위 눈을 끌어내리고 작은 통로를 내기 위해 새벽부터 삽질을 해야 했던 우리.

올여름 대구 동창들은 부부가 함께 후포의 모래 위에서 공을 차고 펜션에선 말발바닥 소발바닥 게임을 하며 그렇게 추억 한 장 더 채우는 1박 2일을 보냈다.

안순이(대구 수성구 신매동)

♥ 40년 만에 처음 참석한 초교 동창모임

대구에 정착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어느 여름날, 동창회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순(耳順)이 다된 나이에 난생 처음 참석하는 초등학교 동창회는 괜히 가슴까지 콩닥콩닥 뛰었다.

아침 일찍 대구에서, 고령을 거쳐 가야산이 아스라이 보이는 작은 시골 학교까지 가는 길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학교 앞 개천에는 그 옛날 섶다리 대신에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져 있다. 매년 가을이면 마을 사람들의 공동 노역(勞役)으로 만들어지는 섶다리는, 우리 꼬맹이들이 책보를 허리에 메고 건너다녔던 다리다. 한겨울 가야산 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칼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종종걸음으로 뛰어 다녔던 다리이기도 하다.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니 졸업 기수별로 텐트가 쳐져 있다. 허리 굵은 느티나무 옆에는 33회라고 명찰이 붙은 텐트가 보인다. 천막 안에는 웬 중늙은이들이 웃으며 떠들고 있다. 까까머리에 콧물 흘리던 악동들은 다 어디가고. 얼굴들이 낯설다.

"나 아래뜸에 살던ㅇ식이야"라고 이름을 대니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껴안는 이도 있다. 금방 친해진다. 40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만난 사이임에도 흉허물이 없다. 준비해온 음식과 술안주가 푸짐하다. 동창회장의 '건배' 소리가 요란하다. 모두들 불콰한 얼굴에 하는 얘기라고는 '공부시간 중에 묘사 떡 얻어먹다가 엉덩이가 큼지막한 여선생님에게 혼난 일' '운동장 한쪽 채소밭에 인분(人糞) 퍼 나르던' 얘기와 '혁명 공약을 못 외워서 벌청소하던 일' 등 끝이 없다. '누구는 누구를 좋아했다'에서 '어느 남선생님과 여선생님이 뽀뽀하는 장면을 봤다'라는 추억담에는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는다. 그 옛날 앞니 빠진 모습이 아닌 누런 금이빨들이 웃고 있다.

더구나 여자 동창들은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로만 불리다가 "ㅇ자야, ㅇ숙아"라고 부르니 신기하기까지 한 모양이다.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프로그램에 이어 노래자랑 시간에는 우르르 몰려나와 함께 흔들어댄다. 나잇살 먹어 불룩해진 허리 생각도 잊은 채….

저녁노을이 어스름해서야 동창회가 끝이 났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간 하루였다. 빛바랜 흑백 필름을 40년 전으로 되돌린 하루였기도 하다.

김성한(경산시 옥곡동)

♥ 할 얘기가 많아 자리 옮겨 찜질방으로

아침 잠이 많아 꼬질꼬질한 얼굴에 베개 자국을 지우지 못하고 등교하는 내 앞 짝지를 작년 가을 동창회 모임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 친구는 날 알아보고 반갑다고 했지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앞 짝지라고 말했지만 난 물음표만 자꾸 늘어놓으면서 과거로 되새김질해야 했다. 알쏭달쏭한 외모에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날 바라보던 한 친구가 답답하다면서 앨범을 구해왔다. 앨범을 펼치자 풋풋한 친구들 속에 집중된 앞 짝지의 모습을 보고 "뭐야! 앨범 속에 야가 지금 니란 말이제"하며 웃음꽃이 번졌다.

세월에 변해버린 친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너무 달라진 이목구비라 해도 발소리 없이 흘러간 세월을 탓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 어느덧 학창 시절 교정 이야기부터 자녀 이야기까지 시간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대화는 달콤하니 무르익어갔고, 자정이 너머 빨리 안 온다고 다그치는 남편 성화에도 불구하고 우린 2차 모임인 찜질방에서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조금씩 변모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숫자도 만만치않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산허리 휘감고 살아온 풋풋한 고향 향수를 품고 있는 친구들아! 가끔 만나 허물없이 넋두리 꺼내 놓고 웃을 수 있는 너희들이 있어 난 행복하단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학교 다닐 때완 달라 스스럼 없어져

작년 이맘때쯤 35년 만에 동창회 모임엘 갔다. 많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디에 살았었고 이름은 누구라고 해도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반면 난 모두들 알아보는 것 같았다. 키가 작았던 데다 별로 변한 게 없단다.

수년간 동창회 모임을 가졌었지만 연락이 되는 친구들과만 했었고 나처럼 핸드폰이 없는 사람은 연락을 못했단다. 다들 예쁘게들 중년 티가 났었다.

난 일을 마치고 막차를 타고 갔던 터라 회식은 끝나고 수다들을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 모인 친구들은 뒷자리 친구들뿐이었는지 내가 아는 친구들은 많이 없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두어 시간을 앉았다가 그냥 와 버렸다.

그 이후로는 동창회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고 비록 독수리 타법으로나마 카페에 자주 들어가 보면서 친구들과 얘기도 자주 나누면서 글도 가끔씩 써 본다.

동창회 사진 올린 것도 구경하고 타자법도 느는 것 같아서 재미가 있다. 오늘도 카페에 들어갔더니 남자 동창이 들어와 전화부터 했다. 사연인즉슨 자기 조카랑 내 딸이랑 선을 보잔다. 학교 다닐 때는 입도 벙긋 못해봤는데 나이 먹은 동창이어서인지 지금은 아주 친한 척 스스럼이 없었다. 벌써 할머니가 된 친구도 있단다.

이제 이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고 나이답게 즐거울 수 있을까? 누가 잘 살고 누가 못 살고는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들 이해하면서 포용력 있게 감싸안으면서 넓은 마음으로 세월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동창 모두가 건강하고 아름답고 멋진 모습으로 나이들길 바라며 이번 동창회 때도 진하게 한번 건배하자.

손해숙(의성군 금성면 산운2리)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정분(경산시 와촌면 용전1리)

다음주 글감은 '동창회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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