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4일 오전 대구 동구 신서혁신도시의 첨단의료복합단지(이하 의료단지) 비즈니스센터 세미나실. 국내외 언론 기자 100여 명이 기사 전송 준비와 카메라 설치를 하느라 북새통이다. 잠시 후 명석한(가명) 교수를 비롯한 모발연구센터 연구진들이 들어섰다. 대표 연구자인 명 교수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구의 신약 1호 '모발애'(발모제) 신약 허가 결과를 발표했다. "식의약청에서 '모발애' 신약 허가를 했습니다. 이 약은 3차에 걸친 임상실험 결과, 실험대상자의 99%에서 모발이 자라는 효과가 나타났고, 유의할 만한 다른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달 말 미국 FDA에도 신약 허가를 신청할 것입니다." 곳곳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모발애' 개발은 탈모로 마음 고생하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복음'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발모제는 먹는 '프로페시아'와 바르는 '미녹시딜' 2가지. 하지만 약값이 너무 비싸 소비층이 제한돼 있다. 하지만 '모발애'는 값이 싸면서도 효과는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만 탈모 인구가 1천만 명이 넘고, 탈모 제품 시장은 3조 원을 웃돈다. 의료단지에서 탄생한 첫 신약 '모발애'는 거대 시장을 겨낭한 '블록버스터'이다. 명 교수는 3년 전 의과대에 있던 연구실을 의료단지로 옮겼다. 그동안 연구했던 발모제의 기술적 보완과 함께 본격적인 임상연구를 위해서다.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하지만 상상으로 그칠 일은 아니다. 앞으로 의료단지에서 생겨날, 그리고 이뤄내야 할 일들이다. 의료단지는 '첨단의료산업 분야에서 아시아 최고의 역량을 갖춘 글로벌 R&D 허브'를 비전으로 하고 있다. 올해부터 2038년까지 총 사업비가 5조6천억 원(국비 2조 원'지방비 3천억 원'민자 3조3천억 원-충북 오송과 복수 지정으로 총 투자액은 증액될 전망)이 들어간다. 대구시는 이곳에서 신약 16개, 첨단의료기기 18개 등의 글로벌 첨단제품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경제적 효과는 엄청나다. 의료산업 45조 원, 관련 산업 37조2천억 원 등 82조2천억 원의 직접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대구시는 의료단지 기본계획에 대한 전문기관 용역 결과와 전문가 의견, 그리고 11월 예정된 충북 오송과의 기능 정리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토대로 단지 조성 계획을 세운다. 시는 성공적인 단지 조성을 위해 최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산업기술시험원, 한국화학연구원 등과 분원 설치 등에 관한 MOU를 체결했거나 체결할 예정이다. 15일엔 세계 최초 3D 초음파 장비를 개발한 국내 유일의 초음파 진단장비 회사인 메디슨과 MOU를 맺었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열정과 상상력이다. 특히 단지 조성 계획을 세울 때는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 30년간 5조6천억 원의 사업비는 목표로 한 성과를 내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신약 개발 분야 예를 들어 보자. 신약 개발에 15년이 걸리고 1조원이 든다는 얘기가 있다. 여기에는 기회비용과 초기 홍보비용까지 포함한 금액이다. 4천억 원을 투자해 몇 개의 신약 후보를 임상 마무리 단계까지 이끈 PTC테라퓨틱스(틈새 시장을 공략해 성공한 미국제약사)가 있고, 7년 만에 자누비아(항당뇨제)를 개발한 머크(Merck)의 사례가 있다.
'대박'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약업계에선 1조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런 생각으론 기업당 평균 R&D 비용이 5조 원에 이르는 10대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할 수가 없다. 참고로 지난해 국내 제약사 중 1위 매출을 올린 동아제약의 연매출은 7천억 원이다. 보다 작은 시장을 겨냥해 빨리 만들어야 승산이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신약 개발에 대한 '표적전략'이 있어야 한다. 지역의 의료기관, 연구기관에선 어떤 분야(질병)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지, SWOT(Strength'Weakness'Opportunity'Threat) 분석을 통해 차별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산업은 전형적인 고위험, 고수익사업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의료산업 육성 정책을 폈지만 성공한 의료클러스터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구경북의료단지가 선정심사에서 유일하게 A등급을 받은 것은 30년간 장기계획에서 성공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자고 있는 역량을 깨워야 할 때다.
김교영 경제팀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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