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희귀병 아들·뇌출혈 남편 둔 이가희씨

"자식 아픈 것도 가슴이 무너지는데, 남편까지 쓰러지니 어떻게 버텨야 할까요."

이가희(가명·38·여·달서구 송현동)씨는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가 뜨면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는다. 갑작스런 전화에 아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고, 어느 날은 남편이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부터 일 년 사이 연이은 불운에 이씨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고 했다.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들 영훈(가명·17)이는 지난해 8월 갑자기 길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내려진 진단은 크론병. 이름도 낯선 이 병은 소화관의 어느 부위에서나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질병이라고 했다. 크론병은 희귀난치성 질환이라 '완치'는 불가능하다. 평생 약을 복용하고,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 한다.

그날 이후 영훈이는 걸핏하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뭘 먹기만 하면 배가 아프다며 뒹구는 통에 한두달 사이에 살이 20㎏ 가까이 빠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올 들어서만 병원에 입원한 것도 벌써 세 번째다. 염증이 심해지면 온몸에 열이 오르고, 기력을 잃고 주저앉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배가 자꾸 아픈데다 약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어지럽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세가 계속돼 학교를 가도 걸핏하면 양호실에 누워있기 일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차라리 휴학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지만 아직 영훈이는 잘 버텨내고 있다. 이씨는 "친구들까지 없으면 가뜩이나 힘든 학교생활을 버텨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 같아 어떻든지 졸업만 하자고 다독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올 8월 일용직 노동자로 공사장에 일을 나갔던 남편 송경호(48)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씨는 "평소 고혈압이 있었던 남편이 아들의 병과 어려운 생활형편 등을 감당하느라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몇 주 동안 혼수상태였던 남편은 겨우 깨어났지만 아직까지 거동은커녕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병실 신세를 지고 있는 상태다. '어버버버' 뭔가 말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전혀 의사소통이 되질 않고, 팔 다리도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생계는 온전히 이씨의 몫이다. 이씨는 하루 12시간 반을 공장에서 일하고 100만원 남짓한 월급을 받아 남편과 큰아들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다. 남편과 아들 간호는 꿈도 못꾼다. 적은 월급이지만 그나마 수입이 있어야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남편은 무료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고, 영훈이는 입원할 때마다 혼자 병원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하루종일 혼자 병실을 지키고, 혼자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지만 영훈이는 맏아들답게 씩씩했다. 미안해 하는 엄마에게 "제가 앤가요. 다 컸는데…"라며 오히려 위로했다.

이씨는 "하루 종일 혼자 병실에 누워있는 남편과 아들, 저녁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채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둘째아들(13) 모두에게 못할 짓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나마 영훈이가 상태가 좋으면 간간이 남편의 병실이라도 드나들 수 있지만, 영훈이가 입원하게 되면 남편과 둘째아들에게는 더욱 소홀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이씨는 "가난하게 살아도 가족 모두가 건강했던 그 시절이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며 "말 못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남편을 보는 것도, 가끔 한 번씩 우울한 얼굴로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걸까요.'라고 되뇌는 아들을 보는 일도 힘겹기만 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한윤조기자 cgdrema@msnet.co.kr

※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사진 크론병을 앓고 있는 영훈(17·가명)군. 영훈이는 자신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엄마 이가희(38·가명)씨가 힘들까봐 하루종일 혼자 병실을 지켜도 싫은 내색조차 않는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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