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달구벌이야기](39)대구의 막걸리

가난한 문인들 피란살이 시름 달래기 안성맞춤

막걸리는 가난한 문인들이 피란살이의 시름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삼삼오오 모여서 호주머니를 털어 마셨다. 하지만 어쩌다 군인들이 합세하면 그렇게 궁상을 떨지 않아도 되었다. 육군본부가 대구에 자리 잡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대다수 문인들이 종군작가단에 몸담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었다. 그 같은 자리는 구상 시인이 자주 주선했었는데, 당시 국방부의 기관지였던 '승리일보' 주간이자 종군작가단 부단장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상 시인 , 술자리 곧잘 주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막걸리 애호가였다. 그의 옆에는 막걸리가 끊이지 않았다. 2군사령부에 있을 적에는 지기지우였던 구상 시인과 자주 어울렸다. 그 밖에 조지훈 시인, 이병주 국제신문 주필, 왕학수 고려대 교수와도 자주 어울렸다. 허름한 막걸리 집에서 밤늦도록 마셨고, 이튿날 '국일집' '청도집' 같은 곳에서 해장국으로 속풀이를 했었다. 그뿐이랴.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막걸리를 좋아했다. 이따금 막걸리에다 사이다를 섞어 마실 때가 있었는가 하면, 대구에 내려와 숙소를 잡으면 비서들이 불로동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받아가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숱한 일화를 남겼다.

막걸리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 빚어낸 술이다.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술이다. 그러나 소주와 맥주가 보급되면서 뒷전으로 밀려났고, 그로 해서 한동안 막걸리 애호가들은 허전했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막걸리가 인기를 되찾고 있다. 전국적 체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는 집도 있다.

#"미용에 좋다" 일본 여성에 인기

그뿐이랴. 막걸리는 암을 예방하고, 손상된 간 기능을 회복시켜 주며, 갱년기 장애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아울러 혈액 순환과 피로 물질 제거에도 좋을 뿐더러, 칼로리가 높지 않아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막걸리는 도수가 낮고, 고유한 맛을 지녔으며, 음식과 잘 어울리는 술이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들은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도 인기가 높다.

요즈음 나라 안팎에서 막걸리 열풍이 드세다. 젊은이들이 막걸리집으로 모여들고, 일본 관광객들은 싹쓸이 쇼핑을 하고 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각종 과일즙이나 화려한 색소를 첨가함으로써 미각과 시각을 함께 자극하고 있다. 그 동안 단점으로 지적되던 숙취와 트림도 크게 완화되어 더 이상 텁텁한 술이 아니다. 그래서 젊은층과 여성들로부터도 인기가 높다. 특히 일본에서는 미용에 좋다는 소문이 나서 여성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반가운 현상이라 하겠다.

막걸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다. 궁핍했던 시절, 허름한 뒷골목 술집에서 왕소금이나 멸치 따위의 간단한 안주로 대폿잔을 기울이며 울울한 심사를 달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때 그 시절의 참상을 알지 못할 뿐더러 자유분방하다. 이제 막걸리는 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걸리의 성분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그 술이 그 술이다. 다만 술을 담는 그릇과 마시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사발에 담아서 단숨에 쭈욱 들이켜는 반면, 젊은이들은 예쁜 유리잔에 담아서 홀짝홀짝 마신다.

#다양한 칵테일로 변신 시작

'막걸리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막걸리에다 사이다를 섞거나 맥주에다 탁주를 섞어 마시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칵테일의 등장으로 변화의 모습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딸기'키위'포도'블루벨리 같은 과일이 빚어내는 빨강'노랑'보라 등의 화려한 천연색의 칵테일이 젊은 여심을 사로잡는다. 언뜻 보면 주스 같기도, 와인 같기도 하다.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기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한 해에 마시는 술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값비싼 양주를 비롯해서 소주와 맥주가 단연코 우위를 차지하지만, 그로 해서 지출되는 외화 또한 엄청나다. 한 해 동안 지출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자그마치 20조 990억원에 이른다는 발표가 있었다. 차제에 주당들께서는 크게 달라진 막걸리로 관심을 돌려봄직도 한데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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