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나의 스승, 시대의 스승'을 읽었다. 김용락은 시인으로 '사람의 문학'과 '대구사회비평' 같은 잡지를 펴냈으며, 지금은 경북외국어대 교수로 있다. 신문사 기자와 잡지 펴내는 일을 오래 했으니 유명한 사람도 많이 만났으리라. 그런 그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권정생, 전우익, 이오덕, 천규석, 염무웅, 임헌영, 백낙청, 김민남, 김종철 아홉 분이 바로 그들이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들이 더 많다. 권정생, 전우익, 이오덕 같은 분들은 이제 다시는 뵐 길도 없다. 그래도 그분들이 남긴 책이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유일하게 전우익 선생은 우리 도서관에 한번 모실 기회가 있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을 쓰신 직후였기 때문에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형식으로 모셨다. 온통 하얗게 센 머리칼에 밭고랑처럼 깊이 파였던 주름살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강연이 끝나고, 우리가 즐겨가던 술집에 선생님을 모시고 가서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고 헤어졌다. 그 몇 년 후 선생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하셨고, 건강이 조금 회복된 얼마 후 김용락 선생과 인터뷰한 글이 이 책에 나온다. 선생님은 정신이 없는 중에도 "시간나면 이오덕, 권정생을 그리워하는 모임 만들자.…문학이 이어져야 해, 글이 이어져야 해.… 똑똑한 놈은 안 돼, 바보 같은 놈 선택해" 라시며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맥을 이어갈 것을 원하셨다. 얼마 후 돌아가셨으니 거의 유언과 다름없는 말씀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영남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1991년부터 '녹색평론'을 발행해온 김종철 선생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스카우트를 해서라도 모셔 와야 할 분을 스스로 그만두게 했으니 너무 안타깝다는 것이다. '녹색평론'이 우리 지역에서 10년 이상 발행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잡지가 김종철 선생과 함께 대구를 떠나고 만 것은 더 아쉽다. '점점 가속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환경문제를 보면서,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생명체들이 지구상에서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대단히 불투명해지는 현실에 직면하여…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욕망 때문에' 펴내게 됐다는 녹색평론의 창간사는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저자가 '은둔하는 한국의 프레일리'라고 부른 김민남 전 경북대 교수는 지역에서는 교육계뿐 아니라 시민단체에서도 널리 알려진 분이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꼭 필요한 일들을 지원하거나 직접 해 오신 선생은 인터뷰에서 '지도자가 잘 안 나오고, 지도자를 잘 모시지 않는' 지역의 풍토를 개탄한다. 제도권 속에서도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별로 없고, 이것이 지역의 보수적 경향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보수성이란 말을 씀으로써 지역을 더 망치는 것 같아요. 가능하면 보수란 말은 안 쓰는 게 좋겠습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에 인지적 부족함이 있어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앞선 사람, 리더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태도로 살펴봐야 합니다."
지방분권과 대구사회의 변화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온 선생의 말이라 더욱 공감이 간다. 지역에서 학자며 문화예술인들이 뿌리를 내리고 지역문화를 꽃피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날로 피폐해져가는 지역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지역의 소중한 인재들이 뜻을 펴지 못하고 시드는 것이나, 끝내 지역을 떠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귀한 말들이 책속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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