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거리! '속도 지상주의' '차량 중심주의' 시대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전국 지자체마다 자동차에 빼앗긴 도로를 사람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차 없는 거리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 역시 예외가 아니다. 1996년 동성로 보행자 전용구역 지정 이후 13년 만에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개통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대구시 차 없는 거리는 동성로, 중앙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차 없는 거리 구상은 줄을 잇고 있으나 정책 고민 및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을 비롯한 전국 지자체들은 도심 상가 밀집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대로·교량·시장·공원·문화 공간까지 차 없는 거리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된 차 없는 거리
16차로 가운데 중앙 6차로가 온전히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8월 1일 개장한 서울 광화문광장 이야기다.
이달 15일 광화문광장 분수대. 시원한 물줄기 소리에 양편 차로 자동차 소음은 이내 묻힌다. 늦가을 더위도 맥을 추지 못한다. '원더풀!' 외국인 관광객은 연방 탄성을 지른다. 이곳 분수대는 12월 12일부터 야외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
분수대를 지나 만난 '플라워 카펫'에서는 꽃내음이 물씬 풍긴다. 시민들은 포토존을 옮겨 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엄마 손을 잡은 꼬마는 "붕붕붕 꽃향기를 맡으면 힘이 솟는 꼬마자동차~" 노래를 흥얼거린다.
차로 쪽 '역사 물길'에선 걸음이 부쩍 느려진다. 1652년(효종3년) 이지함의 '토종유고' 편찬, 1653년(효종4년) 시헌력 채택…, 대한민국 역사를 되짚는 시민들은 역사 물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눈을 돌려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본다. 조선조 정궁 경복궁이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궁궐을 감싸안은 북악산과 인왕산 풍광도 손에 잡힐 듯하다. 남으로는 남산이 우뚝 솟아 있다.
광화문광장에는 관심과 논란, 찬사와 혹평이 공존한다. 도심 속 시민 쉼터로 자리매김했다는 찬사 뒤에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라는 혹평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시원하게 뻗은 길이 557m, 폭 34m 공간은 하루 종일 인파로 북적댄다. 개장 50일 만에 방문객 300만명을 넘어섰다. 광장 양편 도로를 아스팔트 대신 화강암으로 덮은 서울시는 주말에 양편 도로를 모두 막아 완전한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차 없는 거리 실험은 계속된다
국내 차 없는 거리는 1990년대 말 도심 상가 밀집 지역에서 시작됐다. 대구 동성로와 서울 명동이 대표적 사례다. 이후 전국 지자체들은 도시 전체 공간으로 차 없는 거리를 확장해 나가는 추세다. 매주 주말과 휴일에만 선택적으로 차 없는 거리를 도입하는 '보행자 우선 도로'도 시도되고 있다.
부산시는 8월 24일부터 이달 7일까지 시민 1천명에게 부산의 '광화문 광장'이 될 가칭 '부산중앙광장' 설문조사를 벌였다. 부산중앙광장은 2013년 준공 예정으로 부산진구 부전동 삼전교차로∼양정동 송공삼거리 730m 구간에 계획된 곳. 부산시는 원(原)도심 기능 활성화와 품격 있는 도심 공간 재창조를 위해 부산중앙광장 조성을 추진 중이다. 부산시는 "설문조사 결과 시민들은 중앙형 광장, 도심 속 휴식 공간 형태를 가장 원했다"며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광장 조성 계획에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7월 1일 서울 광진교는 국내 첫 걷고 싶은 다리로 개통됐다. 왕복 4개 차로 중 2개 차로를 줄여 보행 공간을 확장하는 실험이었다. 보행로 폭이 3m에서 10m로 확대됐고, 다리 위로 산책로와 자전거도로, 휴식공간을 마련했다.
지난해부터 올해에 걸쳐 탄생한 서울 '노원 문화의 거리', 부산 광복로, 부천 중앙공원 차 없는 거리는 매주 토요일 또는 토·일요일 차량 통행을 제한해 시민 휴식 공간으로 거듭났다. 도심 흉물에서 보물단지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원 문화의 거리에선 매주 토요일 차가 사라진 자리에 가요, 댄스, 재즈, 비보이, 마임,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부산 광복로와 부천 중앙공원 역시 매주 토·일요일 차가 사라진 거리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닐며 각종 축제와 즉석 공연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의정부(중앙로) 원주(로데오거리) 대전(유성구 궁동) 목포(원도심) 속초(중앙시장) 수원(향교길) 등지에 조성되고 있는 전국 차 없는 거리 또한 도심뿐 아니라 대학가, 시장, 문화 거리를 총망라하고 있다.
◆대구 광화문 광장은 가능할까
대구에서도 차 없는 거리 구상은 여러번 시도됐다. 지역 명물거리를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거나 주요 교차로를 광장화하는 안이었다. 이 구상들에 따르면 달구벌대로 또는 동대구로 광장 조성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
2002년 대구시 도시교통정비기본계획과 2003년 대구시 보행환경개선 기본계획 용역기관들은 시청 앞, 봉산문화거리, 약령시 일대의 걷고 싶은 거리화를 제안하면서 달구벌대로, 들안길에 보행친화적 공간을 조성하자는 의견을 처음 냈다.
이후 지난해 말 대구 그랜드디자인 기본 구상에서는 범어네거리(시민 휴식 공간), 계산오거리(역사유적 탐방로의 출발점), 두류네거리(두류공원 연계) 광장화를 제기했다. 이와 함께 신천대로 및 동로 일부 지하도로를 복개해 가로공원으로 만들거나 도로 지하화를 통해 두류공원 녹지공간을 확대 조성하는 안도 나왔다. 생활문화거리로 중구 종로, 동성로와 약전골목, 근대역사문화자산탐방로(약전골목~동성로~삼덕동~신천), 봉산문화거리를 육성하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광장 조성을 비롯한 이 같은 차 없는 거리 구상은 말 그대로 아이디어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바꿔 말해 정책 개발 의지가 없다. 대구시 담당은 "차 없는 거리 확대 원칙은 분명하다. 학계에서는 광장 조성 의견도 들린다"면서도 "실무 부서 협의 과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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