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한 소녀가 대한민국 군필자들을 향해 말했다. "지상 180㎝ 이상의 공기가 얼마나 신선한지 느낄 수 없는 자들, 그대들을 '루저'라 명한다." 졸지에 우리의 대부분이 루저로 전락했다. 분개한 루저들의 융단 폭격이 이어졌고 그녀의 변명이 보태졌다. 간극 없이 흘러가는 요즘의 대중문화 지형에서 이 이야기는 이미 철 지나 강남으로 떠나버린 제비 소리인지 모른다. 하지만, 루저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 군필자들의 공적이 되어 버린 소위 루저녀를 늦게나마 변명해보고자 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루저녀를 핑계 삼아 '미녀들의 수다'에 시비를 걸어 보고자 한다.
'미녀들의 수다'에는 뭔가 중요한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것은 미녀들의 국적으로부터 오는 신비감, 오랫동안 '오리엔탈리즘'의 주변에도 제대로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우리 안에서 발견하는 타자의 생경함과 관련이 있다. 소위 '미수다'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타자의 눈으로 우리를 응시하는 재귀적이고 성찰적인 프로그램이다. 그 재귀와 성찰의 지점이 어떤 면에서 불온하기도 하고, 사소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불온함과 사소함이야말로 우리의 무의식이 발현되는 가장 자연스럽고 우리다운 지점일 수 있으니 그 문제를 시비 삼을 생각은 없다. 문제는 '미수다'가 드러내는 두 가지 시선의 맞부딪침, 즉 그녀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우리를 바라보는 '그녀들'의 시선이 갖는 긴장이다.
일단 우리들의 시선은 '그녀들'에게 향한다. '그녀들'은 영국에서 온 에바와 캐나다에서 온 도미니크, 일본에서 온 사유리와 같은 이름으로 드러난다. 당연히 이들을 향한 시선은 남성적이다. 문제가 되던 그날의 담화대로 그녀들은 '민망하지 않은가'라는 물음의 대상이 될 만큼 간소한 옷차림으로 조금은 위태롭게 보이는 자세로 앉아 있다. 그곳에서 그녀들은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들의 시선은 어떠한 면에서 우리의 습속과 문화를 관찰하고 기술하는 인류학적 시선이다. 두 방향의 시선이 부딪치지만 이 두 선분은 대칭을 이루며 균형을 잡지 못한다. 다만 카메라와 제도라는 권력이 그녀들의 시선에 힘을 실어 불안한 가운데 간신히 파탄이나 모면케 할 뿐이다.
'미수다'는 그러한 면에서 우리의 안방에서 우리를 타자화한다. 이러한 경험은 하지만 재귀와 성찰의 긍정적 힘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생태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조금 전에 언급한 비대칭의 시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루저녀에게는 자기의 자리가 주어지지 못했다. 미녀들의 거울상으로 등장한 '여대생'들은 애초부터 느긋한 주인의 자리, 주체의 자리가 허락되지 못했다. 정작 우리의 공간에서 우리의 딸들은 자기의 자리를 허락받지 못했다. 그녀들은 남성적 시선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인류학적 시선의 대상이었다. 루저녀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응시의 대상이었다. 불편한 자리는 무리수를 부르기 마련이다.
불편한 자리에 있다고 모두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루저녀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것은 또한 그 책임과는 별개로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다. 회를 거듭하는 가운데, 그녀들의 수다는 특정한 패턴으로 고정되고, 처음에는 두드러지지 않던 캐릭터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캐릭터는 이 프로그램의 지배적인 요소가 되어 가장 비성찰적인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우리를 타자화하는 일은 자칫 우리를 소외하는 일이기도 하다. 소외를 지우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다. '미수다'가 애초의 의도대로 우리를 성찰적으로 타자화하는 그리하여 스스로 자기를 반성케 하는 프로그램이 되어주길 바란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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