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변화가 무섭다. 여성의 사고변화는 180도다. 결혼을 해야 할 이유도, 아이를 낳아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낄 정도. 사회 곳곳에 우수한 DNA를 가진 여성들이 커리어우먼으로 포진해 있지만 결혼, 자녀에 비해 자신의 일이 우선이다. 결혼은 선택, 자녀는 한마디로 'NO'. 왜 그 고생을 내가 사서 하냐는 식. 베이비 붐 시절 5~10명씩 자녀를 낳아서 기르던 할아버지·할머니 세대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무책임한 자녀 양산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어머니 세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커리어우먼들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대를 이어가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일이다. 물론 국가나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 편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버리고 '2세는 낳자'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적 또는 사회구조적 차원의 양육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할 터.
둘도 많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5명 이상 자녀를 키우고 있는 집은 어떨까. 아들 셋, 딸 둘을 키우는 한 부부의 집을 찾아가 사는 모습을 들여다봤고, 딸 여섯을 둔 한 부부의 얘기도 들어봤다. 이들은 알콩달콩 재미가 있었고, 힘이 들어도 아이들이 커가는 보람에 살고 있었다. 두 가족 다 한번 움직이면 7명, 8명이라 대가족이다.
◆이광구·이민아 부부, '아들 셋, 딸 둘'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단독주택에 사는 이광구(36)·이민아(33)씨 부부는 결혼 14년차. 고속도로 경산 부근 평사휴게소 식당에서 함께 일하다 눈이 맞았다. 둘은 마치 운명적인 인연을 만난 것처럼 가까워졌고 결혼에 골인했다. 다소 속도위반도 있었다. 첫째 딸 다정(14·중1)이가 조금 일찍 태어난 것. 결혼식 때 이미 생명체로 자리잡고 있었다. 2년 뒤 둘째 호준(12·초교5년)이가 태어났다. 둘째는 장남답게 의젓하고 어머니에게 큰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이후 셋째 주연(11·초교3년)이와 넷째 호연(10·초교2년)이, 그리고 막내 호승(6)이가 태어났다. 결혼하고 정확히 8년 만에 다섯 자녀가 태어난 것. 이들 부부는 피임을 하거나 자녀가 생기는 것을 막지 않았다. 하나하나 식구가 늘어가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였고 또 힘이 들어도 오순도순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 물론 번잡하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11월 30일 저녁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막내는 천방지축 돌아다니고, 셋째와 넷째는 티격태격 싸웠다. 그래도 좋은 것은 자녀들끼리 사회성이 형성돼 부모가 간섭않고 가만 둬도 서로 잘 놀았다.
부인 이씨는 "사실 제가 이렇게 일찍 결혼해 많은 아이를 낳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라며 "제 친구들도 모두 1명 아니면 2명인데 저는 5명이나 되니 사실 조금 부담도 되죠. 하지만 자녀가 많은 걸 기쁘게 받아들여요"라고 긍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남편 이씨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돈도 많이 못 벌어오면서 흥부처럼 아이만 주렁주렁 낳아 힘들게 하지만 잘 키워주는 아내에게 더 잘할 겁니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들 부부에게는 지원군도 있다. 정부에서 매월 보조금이 나오고 있으며, 자녀들 교육비와 양육비도 일부 지원된다. 막내 호승이를 위해선 매월 10만원이 지원된다. 사실 지금 제도하에 이렇게 많이 낳았다면 각종 지원금이 대박이었을텐데 그 전에는 이런 혜택이 거의 없었다. 이렇듯 정부나 지자체 지원뿐 아니라 경산에 있는 조원경 목사도 정신적 지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 가족은 이동도 9인승 차량으로 한다. 7명이기에 한번 놀러가면 공원이든 놀이터든 완전 점령을 해버린다. 인라인스케이트가 2개밖에 없어 서로 번갈아 타기도 하며 나머지는 자전거를 타며 논다. 방이 3개인데 잠은 이씨 부부와 막내, 딸 둘, 아들 둘이 방 1개씩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밥을 먹을 때도 전쟁터다. 맛있는 반찬은 서로 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딸 여섯 키우는 이병철·김정희 부부
이병철(43)·김정희(42)씨 부부는 딸만 여섯이다. 딸부자 중에 상딸부잣집이다. 여섯 모두 건강하고, 서로 크게 다투지도 않고 잘 지낸다. 이들 부부 역시 운명처럼 딸 여섯을 낳게 됐고 혹시 더 낳게 될지도 모른다.
만남은 23년 전 대구 칠성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는 칠성시장 과자도매상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고, 김씨는 이 동네 처녀였다. 과자선물도 주고 데이트를 즐기다 덜컥 첫째를 얻었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이들 부부는 4년 뒤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후에 줄줄이 다섯 공주를 더 낳았다. 첫째 딸은 벌써 스물셋이다. 동생들을 봐 줄 위치에 있는 것. 그 뒤로 대학생, 고등학생, 초교 6년, 초교 5년, 초교 1년생이다. 이들은 서로 서로 도와주고 옷이나 책도 대물림하며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이씨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 남짓. 사실 많이 부족하다. 여섯 딸을 키우다보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여섯 딸이 태어날 당시에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자녀들 학비는 국가에서 대신 내주고 있다.
이들 부부는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자녀가 생기면 무조건 낳았다. 그래서 딸부자가 됐지만 후회는 없다. 둘은 "나중에 사위가 여섯 명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돈이 없어도 행복합니다"라고 상상했다.
이씨는 작은 바람도 있다. 여덟명이 모두 여유있게 살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집을 갖는 것. 그는 "열심히 일하고 살다보면 좋은 일도 분명히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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